김청우 시인 / 중력
그대는 당신의 검은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력으로 수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대의 사건이 자기磁氣로 수축하고 내부의 밀도가 높아졌을 때 붉은 불이 붙었습니다. 동시에 위성처럼 돌던 내 꿈과 수치와 모멸이 붉은 피 되어 성기로 일어서고 그대는 광속으로 8분 20초의 거리를 뛰어넘어 내 살갗 위를 흘러 태웁니다. 자기의 죽음 하나 꺼내 보려는 수축과 각인刻印으로 죽음을 확인하려는 팽창의 힘이 대면합니다. 그 균형으로 주계열성이 된 그대의 중심핵에서는 우울로 빛을 만드는 융합반응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대의 표면을 만들었고 내 피부를 스쳤음을 몰랐습니다. 나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우울이 다 타고 이제 그대의 중심에는 빛의 중심핵만이 그대를 밝히는 때가 옵니다. 그대의 중심이 빛으로 가득 차면 융합반응은 멈춥니다. 거리에 멈춰서 생각을 합니다. 차가워진 내 귀에서는 검은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고 벌레는 검은 쥐가 되어 곧 대기가 사라질 분홍색 하늘을 떠돕니다. 하지만 여전히 몰랐다는 이유로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그대는 두 가지 길을 준비합니다. 두 개의 원으로 팽창과 수축을 동시에 하는 겁니다. 들여다보는 시선이 당신의 검은 구멍에 부딪힐 때 생긴 충격파가 당신의 형태에 가 닿는 순간 그대는 폭발합니다. 사방에 흐트러진 당신은 중력을 떠받치지 못해 검은 구멍만 남습니다.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나는 산산이 부서져 공간을 떠돕니다. 당신은 사방에 있습니다. 빛보다 빠른 생각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대뿐입니다.
-시집 『빨간 두건의 뱃속에 잠들어 배고픈 늑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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