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시인(장흥) / 화양연화
-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과연 언제였을까
어떤 마음들이 저 돌담을 쌓아 올렸을까 화가 났던 돌, 쓸쓸했던 돌, 눈물 흘렸던 돌,슬펐던 돌, 안타까웠던 돌, 체념했던 돌, 그런 돌들을 차곡차곡 올려놓았을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을 때로는 발길질에 채였을 어느 순간 차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제자리 지키고 있었을 조금은 흙 속에 제 몸을 숨겼을 심연 속에서 푸른 눈을 뜨고 있었을 그런 것들을 일으켜 세웠을까 저자거리를 헤매이던 마음들이 그 바람 불던 거리에서 자꾸만 넘어지던 마음들이 자기 몸을 세우듯 돌을 쌓아 올려 돌담을 세워 태풍에도 끄떡없는 울타리를 만들었을까 하나하나의 돌멩이들이 채워 논 풍경 그 돌담 밖으로 목련꽃 봉오리 벙그러질 때 그리운 추억의 이름으로 견고해지는 봉인 아름다운 시절을 소망하는 합장하는 손들
조윤희 시인(장흥) / 우기의 하늘 밑에선
건조대에선 마르지 못하는 빨래들의 꿈이 젖은 채 널려 있었고 우리들의 꿈은 지하실의 벽처럼 얼룩져갔다 가난의 독기처럼 피어나는 하얀 버짐꽃 광합성작용도 일으키지 못하는 영양실조의 세월 속에서 매번 냄새나는 내장과 살가죽을 씻고 또 씻어내며 악취로부터 우리들의 코를 보호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코를 틀어쥐는 악취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푸른곰팡이 슬어가는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거리에 나서면 여기저기 쏟아져나온 군상들 팔십을 웃도는 불쾌지수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펑펑 튀는 불꽃들 저주 퍼붓듯 하늘 향해 소리치고 싶었다 내려와! 그렇게 낮게 떠 있을 바엔 누가 하늘이고 누가 땅이야? 하늘과 땅 맞붙어 한바탕 놀아보자고 하늘이 하늘색이 아니면 하늘이 아니라고 하늘이 햇빛을 비추지 못하면 그게 하늘이냐고 하늘이 땅 위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잊었냐고 우리들의 삿대질은 항상 위를 향해 있었고 땅밑으로 끌어내려 패대기라도 칠 것 같은 악다구니 퍼붓다 잠이 들고 온몸엔 비늘이 돋아나고 땅 위를 기는 파충류가 되어 밤새도록 뻘속에서 난장판을 벌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우리들 희망의 마디마디에는 밤새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소리 그대로 폭삭 부식되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절망은 끝간데 모르고 절망의 끝이 공작의 꼬리처럼 활짝 펴주길 바라는 화투패 같은 희망은 신경통의 몸뚱어리 일으켜세우며 질질 끄는 슬리퍼처럼 끌려가는 하루 커튼을 열면 잿빛 하늘은 여전히 그만큼에서 토라져 있었다.
-시집 『모서리의 사랑』 세계사 94, 1999.71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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