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지 시인 / 난바[難波]
난바는 병원에 있었다. 수의사는 감탄했다. 약국에서 죽은 토끼 냄새가 났다. 멜빵바지 입은 꼬마가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가 닥치라고 했다. 안전하게 사랑하세요 초박형 콘돔 사이즈. 아이의 내일을 책임지세요 스무 가 지 야채 들어간 어린이 주스 꼬마는 주스를 먹다가 토한 것이다. 모든 일이 처음이었던 캐셔는 손님들을 향해 외 쳤다. 삼, 삼, 삼... 삼천원입니까?
난바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식사 했다.
난바는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쳤다. 배달원이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하나같이 먼 곳으로 가는 택배들입니다 요. 상담원 김미영 씨가 어저께 아빠의 부고(訃告)를 들었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저번 달 어머니가 보셨던 산술 점에서 기인했다고 했다. 미영 씨가 눈물을 훔쳤다. 삼천오백 원 결제했습니다. 영수증은 파쇄해드릴까요?
난바는 신촌역에서 2호선을 탔다. 이른 낮이었으므로 사람이 없었다.
난바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마셨다. 세 쌍의 커플들이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지우고 난 뒤에 우린 어떻게 살지? 이곳의 무드는 완벽하지. 커피는 그만큼 구리고. 사실 나는 두 주일 동안이나 머리를 안 감아본 적이 있어. 아메리카노는 점충적으로 식는다. 작용(作用)이다.
난바는 길거리를 걸었다. 늙은 자전거족에 합류했다. 그중 두 명의 자전거는 훔친 것이었고 환경을 보호하세요 몸 건강에 유의하세요 미세먼지 농도 167 그린 시티 사업의 일환으로 배치된 그린-자전거를 타세요
난바는 엄숙한 뒷골목을 가로질렀다. 따-르-릉 따-르-릉.
난바는 복도식 아파트를 걸어 현관으로 진입했다. 아파트 단지 너머에서 애들의 소리가 들렸다. 잡아 봐. 잡아 봐. 누군가 잡혔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긴 복도 너머 방 안에서, 애정 넘치는 충간소음이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난바는 죽었다 안 죽었다 했다.
송희지 시인 / 아카이브 -극지에서
-연인아, 우리는 얼어붙은 문가에 서 있구나.(1)
형이 무쇠 솥에 마크틱(2)을 삶는다. 창밖에 붉은 눈 내리고 있다. 풍경 칭칭 소리 내어 흔들린다. 익어가는 살갗의 냄새 맡는다. 우리는 겨우내 광야를 떠도는 한철 사냥꾼들, 털모자 그늘에 낯을 감춘 여행객들, 현지인식 나무별채에서 사냥한 고래 물범의 뼈를 들어내고 겨우살이를 짜 만든 가구 틈에서의 생활. 수조 속, 가지런히 담긴 짐승이 짖는다. 그것은 올해 가장 추운 날 형이 호수 둘레에서 주워온 알 속에서 태어난 것. 짐승은 겨우내 펄펄 검고 찬 영혼을 뱉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늙은 몸을 토한 뒤 죽는다고 한다. 짐승의 인간만한 깃털이. 가슴지느러미가 네 쌍 팔다리와 수만 개 겹눈이 햇빛을 받아 찬란 반짝이고 있다. 모두 형과 내가 길러낸 것들이다. 간밤에 쌓인 눈처럼. 붉고 깨끗한 꿈을 보았다고 형은 말했다. 우리는 내려다보고 있었고, 우리의 발밑에 피투성이 짐승이 있었다고. 그것이 모든 이빨을 허물고 꺼낸 몸을. 색색 괴괴한 모형을 우리가 다 봐버렸다고.「꿈이라서 다행이야」 짐승에게 귀한 것을 먹이며 형은 중얼거렸고,「꿈같은 거 영원히 꾸지 않았으면 좋겠어」덧붙였는데 꿈속에서 우리는 생면부지 타인이었고 기록되는 여백이었고 모국의 음식을 먹었고 모국의 뜻대로 살았다 고 한다. 넓디넓은 꿈의 차양 반투명 유리로 이루어진 수조 속에 담긴 물이 얼어가고 있다. 사각사각. 호수의 얼음과 얼음 등등 조우하고 서로를 그루밍 하는 소리. 파편과 잔여. 날마다 호수의 수위는 차오르고, 짐승은 꿈의 성조로 짖고, 형과 나는 때때로 흘러가는 것을. 고정되는 것을. 그러한 모양과 동작을 이해한다. 보이지 않아도 안다. 창밖에 붉은 눈 내리고 있다. 벽난로의 잉걸불 깨끗이 흩날린다. 사각사각, 무언가 타들어가는 것이 있고, 한철의 성교 끝나고, 다 벗은 우리는 그 앞에 앉아 몸을 녹여보려고. 보려고 한다. low fidelity 보인다. (1)제오르제 바코비아, 「겨울 풍경Tabloude land 변용 (2)고래의 껍질과 지방으로 만드는 이누이트의 요리. -『웹진 아는사람』2021년 2월호 중에서
송희지 시인 / 어느 누구의 모든 철수**
그들은 신촌역 6번 출구에서 처음 마주쳤다. 그들의 주머니 속에는 각각 잔액 칠백오십 원짜리 버스카드와 절반이 녹은 사과 맛 캔디가 들어 있었고, 그들은 주로 쓰는 손이 다르다는 공통점과 주로 쓰는 손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철수1과 철수2는 마주 보고 있다 서로의 철수를 탐색하는 중이다 너의 길고 각지고 때때로 폭력적인 철수는 나의 철수에 끼워 맞추기에 얼마나 적합한가 철수1 부모는 죽은 다음날 나를 낳았습니다 모르는 손들에게 길러진 아이는 얼마나 빠르게 고백하는 법을 배웁니까 어릴 때부터 디저트에 관한 패티시가 있었습니다 마롱 몽블랑 본디지 차림의 크로캉부슈 알몸으로 신음하는 브륄레, 녹아내리는 시간들로부터 혀는 전속력으로 달아납니다 제자리 뛰기를 하며 튼튼해집니다 입 속 캔디의 하중을 견디며 캐비닛은 넓어집니다 끈적끈적한 혀가 내 키보다 커지고 어때, 죽은 부모를 좀 닮았습니까 철수2 토끼 머리를 가진 애인은 일주일 전 죽었습니다 그가 생전에 사랑했던 당근이 방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고, 죽은 애인은 온종일 당근 주위에서 뜀박질하네요 애인의 가슴속에서 녹색 털들이 휘적휘적 튀어 나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은 사람, 귀신과 함께 보내는 밸런타인데이에 관해 들어본 적 있습니까? 짓무르는 당근에 관해 들어본 적 있습니까? 사랑했던 사람은 모두 죽을 사람, 우리는 타인 주제에 밤일을 좀 잘합니다 자꾸만 입속에서 파란 거품이 흐릅니까* 거리의 불빛이 환하다 그늘이 발생한다 그런 순간에 철수는 철수를 이해한다 오지선다의 방식으로 그럴 수 있지 철수는 철수에게 철수를 끼워 넣는다 철수는 딱 맞거나 맞지 않고 불빛은 밤보다 오래 산다 조금 어두워졌을 뿐 하늘은 여전히 성경처럼 파란빛을 띠고 있고 배고픈 사람들이 귀를 세운다 두리번거린다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녹색 발, 더 이상 불빛은 하늘과 사람을 분간하지 못한다 *우리말에서 ‘BLUE(파랑)’과 ‘GREEN(초록)’의 두 가지 색은 모두 ‘푸르다’라는 말로 쓰인다. **서윤후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에서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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