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석 시인 / 며칠, 이상한 직업
몇 개의 사각을 모아 놓으면 집 한 채가 된다는 사실 넓은 사각의 양쪽을 구부리면 지붕이 된다는 사실
몇 켤레의 신발과 부르는 소리를 모아 놓고 대답하는 사이는 문이 된다는 사실 이 집은 사각 하나가 더 숨어 있죠. 아마도 사각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미지의 방 하나가 있겠죠. 고래를 숨겨놓거나 아직 얼굴이 없는 아미를 숨겨놓기 좋은 곳이죠. 다정한 이름이 생기죠. 사람들이 찾는 것은 정교한 사각이지만 둥근 관계들로 세 들고 싶다는 것 몇 개의 숫자를 빌려 현관을 갖는다는 것 나선형 햇살이 드는 채광창을 갖고 싶다는 것. 가늘고 부드러운 음식냄새들을 오래 앉혀놓고 싶은 식탁을 갖고 싶다는 것.
세상에는 사각을 중개하는 이상한 며칠의 직업이 있었다. 마음을 가늠해서 가로 세로를 맞추고 멈춰 있던 네모를둥글게 만든다. 사각의 면에다 월세를 표시하고 먼 별을 입주시킨다. 세상의 월세들은 늘 비싸고 삐걱거리는 중개료를 받는다. 많은 사각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단지 비스듬히 기운 몇 개의 사각만 갖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 튼튼하고 넓은 사각을 중개 받고 싶다는 사실. -『다층』 2015.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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