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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수옥 시인 / 파동의 날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6.

신수옥 시인 / 파동의 날개

 

 

무엇이 이토록 조여올까요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해도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허우적대며 온 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출렁대는

파동이었어요

 

마루의 환희가

느닷없이 골에 쏟아져

눈물 헤치느라

아픈 날들 많았어요

 

살아온 날 어느 부분도

생략할 수 없어요

 

새로 태어난다면

홀가분히 날 수 있을까요

제 날개에 갇힌 새가

숱한 매듭에 묶인 채

곡선의 언덕에서

없는 날개를 펄럭이는 오늘

 

골짜기 아래

또 엎어져 울고 있는 내가 보여요

 

 


 

 

신수옥 시인 / 그날의 빨강

 

 

한여름 세찬 소나기 맞은 맨몸

 

가시광의 빨강을 빨아들인 꽃이

더욱 선명해졌다

 

9월의 샐비어는

탱고를 추었다

 

스무 살 처녀들의 재잘거림

 

반도네온 연주처럼

몰려왔다 사라졌다

 

빨강은 짙어지고

짙어져서 더욱 외로워지고

 

젊음을 두고 와서

머리는 늘 그쪽을 향했는데

 

돌아갈 날 기다리지 못하고

붉은 저녁노을 속으로

 

사라진 꽃

 

빨강이었다

눈이 저릴 만큼 강렬한

 

 


 

 

신수옥 시인 / 어둠의 껍질을 벗기다

 

 

징검다리 건너다

물속에 떨어진 별을 줍는다

보름달 환한 곁에

일렁이는 얼굴 하나

양수 속 슬픔이 빠져나온다

 

물길을 나누는 징검돌

제 몫을 부여안고

발아래 흔들릴 때마다 징검돌에 긁힌

오래된 통증이 날을 세운다

 

물이 모서리를 깎는 세월

부딪혀 찢긴 상처를 핥으며 울었다

 

떠나온 자리를 찾지 못해

녹슬어 빛바랜 별들을

수장하는 새벽

개울가 버들잎의

비릿한 조사

 

징검돌에 긁힌 어둠이

젖은 허물을 벗는다

 

-시집 <그날의 빨강>에서

 

 


 

신수옥 시인

서울 출생.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同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이수. 이화여대, 서울산업대 강사 역임. 2013년 4월 《한국수필》 등단. 2014년 7월 수필집 『보석을 캐는 시간』 출간. 2014년 《문학나무》 가을호에 시부문 당선되어 등단. 2015년 <젊은 시 12인>에 선정. 시집 <사라진 요리책> <그날의 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