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홍배 시인 / 불면
오늘을 후회하듯 눈은 펑펑 내렸다 하루의 밖으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리드미컬하게 긋는 아픔, 그 아픔으로 적설량이 표기되는 꿈이 버린 수면지대, 눈으로 수몰되는 몸뚱이 안으로 심장은 쿵 가라앉고 외톨이가 된 맥박 하나가 히죽 히죽 떠올랐다 어디로 뛸지 모르는 시간에 밑줄을 긋고 자정을 가리키는 손가락, 손가락 끝에서 진화한 검은 한나절은 손바닥이 숨을 쉬었을까 숨 한 번 참으면 한 쪽 다리가 자라 머리가 되고 되돌려지는 만큼 메아리를 잃어버린 교회의 종소리가 음악의 기하학적인 문간에서 상냥하게 좌절할 때 바람은 여인숙의 차가운 숙박부 안에서 안녕했다 금욕하는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눈은 더 내려 발정인 듯 벽에 걸린 여우 가죽이 윙윙 울었다 울음끼리 하나로 모이는 사람의 꼴, 모양대로 쉰 부엉이의 목청에서 눈보라가 뿌려지고 울음 속이 비어 외로운 밤새가 유혹하는 대로 흘러, 어제와 오늘이 속죄의 바다에서 만나 조용히 서로를 두려워했다
배홍배 시인 / 라르게토를 위하여
이젠 끝내야 해 마주하는 방향으로 슘 쉬는 낯선 시간을 내일보다 월등한 오늘밤 춤을 더 추어야겠지, 라르게토
사랑의 무지개가 저무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칠 수만 있다면 너를 잊는 밤은 아름다워
붉고 외로운 태양을 증오하는 날들을 위하여 그녀가 외진 곳에서 눈부시게 운다
멀리 뇌성이 데려가는 마지막 오늘을 조용히 붙들 수는 없을까 부엉이보다 낮은 신음으로 그만큼만 뒤로 밀리는 적의의 숲까진 다시 사람의 풍경
-시집 『라르게토를 위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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