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 시인 / 다 써버린 걸음으로
어머니, 폭삭 늙은 유모차의 유모로 취직하셨다 유모차를 밀면서 걸음을 달래고 있다, 자꾸만 바닥에 들러붙는 신발과 빙글 웃는 유모차
일 못하는 유모를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것일 텐데, 어머니 애기엄마가 걸음마 들고 뛰어올 때를 기다리다 지친 듯 아장아장 걸음을 싣는다 유모차 가득
강 건너 아이들은 그림자를 숨기고 훔친 관절을 쪼아대고 있다 날랜 신발을 타고서 저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날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마침표 없는 길이여서 접착제로 이어 붙인 무지개여서 가장 아기일 때 걸음, 가장 삭은 걸음을 태우고는 두 번 다시 엄마로 오지 않을 거라는, 어머니
무연고 아기걸음으로 손잡이를 붙잡고 유모차의 기분을 살핀다 엄마 없어도 울지 마, 재활의 말씀을 유모답게 비끄러매는 것, 유모차와 유모의 발길이 붙들린다는 것은 반드시 도착하는 막다른 길과 아무 데도 가지 않은 시발점이 유모에겐 저곳이고 아기에겐 이곳이어서
어머니, 걸음을 만들어 늙은 아기를 키우신다 다시, 유모차를 미는 마음으로 미는 신발과 끌려가는 신발이 황혼 길에서 색즉시공 바퀴 빠진 유모차는 붉은 막에 닿은 것처럼 노을과 오래도록 몸을 섞고 있다 계간 『시선』 2022년 여름호 발표
정미 시인 / 톡, 카톡으로 꽃상여
시시콜콜하게도 불길하게도 장소 불문 시도 때도 없이 까마귀 떼들 출몰한다지 빠르게 느리게 후미진 방들을 떠도는 우리들은 까마귀들 비행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늙어간다지 행방불명의 영상을 입은 그녀도 명이 짧은 파리한 그도 까마귀 떼 울음 속에서 살아났다가 영정사진만 깜박 비추고 사라진다지 이쪽 방은 까톡 저쪽 방은 카톡 단톡방은 까악톡
조문 카톡에 검은 테 이미지에 그가 묻혀버렸다 하이얀 국화꽃무더기에 운명한 그를 묻어버렸다
단톡방에서 쉴 새 없이 조의를 표하는 까마귀 떼들 안녕을 뭉개는 까마귀들 밤새 비문으로 들락거리고 안녕은 안녕답게 액막이까지 전해준다지 사람 없는 쪽방에도 비보를 날리고 오래 잠긴 깃털이 어느 언저리쯤에서 까악 운다지 사람노릇에 질린 안녕이 암전을 쏘면 단톡방 이마에 걸린 조등도 삭제파일로 죽어간다지 매우 카톡적이게 피날레 또 꽃상여
계간 『시산맥』 2022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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