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희 시인 / 민들레
길모퉁이 처질러 앉아 있는 민들레 반나절 햇살이 와서 깨운다,노란 꽃
그 위에 반 평의 햇살도 퍼질러 앉는다 꽃술 속에 든 나비 한 마리 온몸에 파란하늘이 묻어있다
이가희 시인 / 숨 쉬는 일에 대한 단상
항아리 속 검은 보자기 아래 노란 꽃술들 살짝살짝 보자기들 들어 올리며 고르게 숨을 쉰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끼얹은 때면 하루가 다르게 살 차 올라 마치 둥근달 보는 것 같은데 물관부를 따라 물 길어 나르는 노랫소리에 맞춰4분 음표들이 방안을 뛰어다닐 것 같은데
숨 쉬는 일이란, 틈새를 비집고 촘촘한 영토를 다스리는 일이다 고개는 떨구었지만 단 하나뿐인 내生을 수직 상승시키는 일이다
이가희 시인 / 둔산동. 2
신도시 길 따라 한 소절 바람에 몸부림치는 이파리 큰 초년생 플라타너스 잔가지가 옆으로 늘어날 뿐 황달 든 누런 잎만 곁가지에 매달 뿐 해가 바뀌어도 몸통 굵어지지 않는다 영어, 수학, 컴퓨터, 피아노...... 초등학생들 목에 맨 가방처럼 늘어져 지친 가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난 가위를 들고 목 졸린 시간의 가지들을 싹뚝싹뚝 쳐나간다 얼마 지나자, 그의 가슴에서 새근대는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흰 구름을 처음 보았다고 새소리, 바람소리의 귀엣말도 내게 들려준다 아직 온기 남은 새들의 깃털은 가벼움의 자우도 알려준다고 어느덧 푸른 손을 뻗은 그가 내 몸에 전지가위를 댄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미 시인 / 다 써버린 걸음으로 외 1편 (0) | 2023.05.19 |
---|---|
정공채 시인 / 노기자 (老記者) 외 2편 (0) | 2023.05.18 |
이령 시인 / 풍장 외 1편 (0) | 2023.05.18 |
김건화 시인 / 개구리주차 외 2편 (0) | 2023.05.18 |
서안나 시인 / 손톱의 서정 외 2편 (0) | 2023.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