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시인 / 손톱의 서정
손톱은 내가 처음 버린 영혼 손톱은 영혼이 타원형이다
손톱은 죽어서 산다 끊임없이 나를 밀어낸다
손톱을 오래 들여다보면 나무뿌리가 뻗어 나오고 진흙으로 두 눈을 바른 아이가 더러운 귀를 씻고 있다
손톱을 깎으면 죽은 기차들이 나를 통과해 가고 늙은 쥐가 손톱을 먹고 있다
늘 바깥인 손톱의 밤은 얼마나 캄캄한가 사랑은 개연성 따위는 필요 없다
멀리 날아간 손톱은 가끔 얼굴이 되기도 한다
서안나 시인 / 애월 2
내 늑골에 사는 머리 검은 짐승을 버렸다 애월이라 부르면 밤에 갇힌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맨발로 돌 속의 꽃을 꺾었다 흰 소와 만근의 나무 물고기가 따라왔다
백사장에 얼굴을 그리면 물로 쓰는 전언은 천개의 밤을 끌고 온다 귀에서 천둥이 쏟아진다
시집에 끼워둔 애월은 눈이 검다 수평선에서 밤까지 밑줄을 그어본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검정은 어디쯤에서 상심을 찢고 태어나나 나는 밤을 오해한다
나는 오늘부터 저녁이다
서안나 시인 / 먼지 인간 2
우리는 두 번째 토요일에 3-1번 출구에서 모입니다 누군가 새로운 시집이 나온다고 하네요 참석할 것이라며 모두 핸드폰에 메모했습니다 시집이 그날 나오지 않더라도 반드시 만나자고 웃으면서요 3층에서 만나 1층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1층의 약속은 더 전생에 가깝지요 뜨거운 여름 한강변에서 만나 뜨거운 삼겹살을 먹고 뜨거운 차를 마시고 우리는 뜨거운 강과 바람을 만날 예정입니다 네 발의 짐승이 되어 불길을 통과하고 나이테와 뿌리를 거쳐 젖은 두 발로 바람과 강물 속을 오래 걸어 흐릿하게 지워져 흰 뼈만 남아 허랑방탕하게 돌아오겠지요 시집이 나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ㅁ이라고 쓰고 나는 구업에 갇힙니다 흙으로 무너져 태어나는 중이지요 우리는 두 번째 토요일 3-1번 출구에서 모입니다
-월간 『시인동네』 2020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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