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시인 / 비단길 1
내 밀려서라도 가야 한다면 이름만이로라도 아름다워야지 비단길 허나 지나는 마음 쓸쓸하여 영 자갈밭일 때 저기 길을 끌어가는 덤불숲 사이로 언뜻 몸 감추는 세월의 뒷모습 보인다 저렇게 언제나 몇 걸음 앞서 장난치며 어디 헛디뎌봐 유혹하는 허방이여, 온다던 사람 끝내 오지 않아서 기어이 찾아나선 마음 성급하다 발 거는 걸까 잠시 허리 굽혀 신발끈이나 고쳐 매면 흐린 물둠벙에 고인 행색 더는 고쳐 맬 수 없는 생애가 엎드려 있다 앞서거나 뒤쳐지는 게 운명이라서 대상의 행렬은 뽀얀 먼지 속에서 유유한데 비단길, 미끄러운 아름답게 나를 넘어뜨릴 때 어디 經을 외며 지나는 수도승이라도 있어 저런 조심해야지, 일으켜주며 세상의 흥진 온전히 털어내는 법 가르쳐줄까 물음표처럼 휘어진 등뼈 곧추세울수록 먹장구름은 다시 우르르 몰려와 기우뚱거린다 지나가는 저 빗발 긋는 동안이라도 내 멈춰서지 못하는 건 영영 모래기둥으로 변할 몇천 년의 전설 두렵기 때문이 아니다 밀려서라도 가야 할 인연의 사슬 질기니 이름만이라도 아름다워야지 비단길 얽힌 마음 다잡고 걷다 보면 길 잘못 들었다며 앞을 기로막는 이정표조차 그렇게 정답고 눈물나는 것을
강연호 시인 / 비단길 3
멀리 가다 보면 길도 저를 포기하던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지고 드러눕는 길을 달래는 마음이 또한 기댈 곳 없어 비틀거릴 때 지도책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낯선 지명들도 철 지난 이파리마냥 우수수 떨어져내린다 國道 여기서 미련없이 끊겨 버스 지나가면 흙먼지 뽀얀 기다림이 자갈마저 튕겨 날리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하기는 정류장이랬자 표지판 하나 없는 비포장도로에 누구라도 멈춰 서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삶의 뒷덜미를 낚아채며 날은 저물고 오늘 안으로 약속해 놓은 목적지도 없는데 막차 끊어지기 전에 타기는 타야 할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조급함이 물결 친다, 너 역시 가야 할 어떤 定處를 미리 새겨두었다는 걸까 보퉁이 짊어진 어둠이 먼저 다복솔로 기어 어디론가 부지런히 퍼져간다 네가 자는 잠이 언제나 새우잠이듯 내가 기다린 건 오랜 습관일 뿐 무엇을 기다렸는지조차 모를 세월 흐르도록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서 이제 너도 가야 한다 기억한다면, 철든 짐승처럼 터벅터벅 걸어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길을 너는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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