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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옥종 시인 / 연어의 노래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9.

김옥종 시인 / 연어의 노래

 

 

그대여

이쯤에서 자갈밭에 이부자리를 펴자

 

너는 춥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외롭다라고 등을 긁어주마

 

시린 여울목의 안통 스폿에서 산란하자

 

네 배꼽이 너덜 해지고

나의 배꼽이 헤지도록

 

가파르게 도달했으니

 

바다와 민물이 교차하는 기수 구역에서

 

네 살과

 

내 살이 교차하는

 

계절의 간극에서

너의 쓸쓸함을 애무해 주마

 

혼인 색의 주검으로

 

깨어나는 것들의 태생은

내려놓을 고향이 없다

 

-시집 『민어의 노래』(휴먼앤북스Human&Books, 2020) 수록

 

 


 

 

김옥종 시인 / 벼락 새비 젓

 

 

이제서야

당신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슬픔이 슬픔을 위로할 때는

안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의 생채기가 맞닿아서

덧나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슬픔에게 다가서고자 할 때는

생채기의 반대편을 날이 선 칼로 베어 낸 선혈로,

가만히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곤히 잠든

당신의 이른 새벽에

동부콩을 넣어 냄비 밥을 짓습니다

토하젓은 없고

별들을 향해 튀어 오르던

징거미 새우를 데치고

쪽파와 달래와 다진마늘과 간장과

고추가루로,

벼락같이 무쳐낸 새비 젓에서는

당신의 쇄골에서 나던 항유고래의 냄새가 납니다

 

인연이 저물고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발효되지 못하고

골마지 낀 채로 잠들어버린

막걸리 식초처럼 허망한 새벽에

첫 닭이 울기 전

쇠구슬같이 내리는 이슬을 어깨로

받아내며 돌아오는 길에 묻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당신을 짓고

허물어 내야

봄이 오는 것인가요

 

-시집 『잡채』(휴먼앤북스Human&Books, 2022) 수록

 

 


 

 

김옥종 시인 / 겨울이 지고 꽃이 만발하다

 

 

그래 용서하마

쉼표 없이 허우적대며 걸어온 길

느낌표 하나 없이 접는다고

더 아쉬울게 어디 겨울뿐이겠는가

뒷뜰에 자리 보전 하고 누은

고숫 잎에 비가 내리던 날에

내 저무는 사랑의 뒷꿈치에는

서리가 내렸다

잊어야 할 만큼은 아니어도

씻겨 내려갈 만큼의 빗줄기여야

가슴은 젖어 있을 터,

이랑을 타고 흐르는 세월을

담아두진 못하겠지만 여태 가물었으니 한 시절은

녹록친 않아도 견뎌낼듯싶다

지금 내리는 눈은 소멸해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다

그리운 것들을,

누르고 눌러서 화석으로 만들고

굳힌 한 세월 꽃감 빼먹듯 하나하나 해동시켜

어느곳의 멍이 더 깊은지 헤아려볼

시간을 조금 벌어보자

아주 어린 시절

매질에 맨발로 달아나던 그 신작로에도

눈꽃은 피어 있었고

오일장에 가신 울 엄니 떨군 해를 등지고

대실 잔등너머 핼쓱해진 붕어빵을 사오실때도,

가출해서 돌아오던 그날 읍내,

오십원 어치는 항상 허기졌던

피래네 오뎅집 앞 도로 위에도

녹아서는 안되는 기억 몇 개쯤은 포근히 내렸다

결별한 사랑을 기다리다 맞은 공중 전화 박스 안의

첫눈과

몇해를 헤매이다 맞았던

보성강에 내리던 치유의 눈도 기억한다

지금 내리는 눈은 길을 떠나지 못한것들에 대한

위로의 술이다

지치고 힘들어하는것들에 대한

해장국이다

애써 얼리려 하지 않을것이다

어느 가슴위에 녹은들 어떠하냐

하천에서 강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갯내나는 따뜻한 사람과 만날것이니

벌어놓은 시간은 아무데나 조금씩

청설모처럼 묻어두자

 

 


 

 

김옥종 시인 / 늙은 호박 감자조림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고단한 저녁의 혈자리를 풀어주는

가을 끝자락의 햇볕을 모아

한철 시퍼런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절망의 밑둥을 잘라 내어 그 즙으로 조청을 만들고

끈적끈적한 세월을 맛볼 수 있게 만드는 요리

꼭 그런것 만이 아니어도 좋다

적어도

그 계절의 움푹진 골짜기에서 흐르는

향기만이라도 담아서 덖어 주고 쪄내고

네 삶 또 한 감자처럼 포근히 익혀줄 것이니

때를 기다려 엉겨 붙어주시게나

전분이 할 수 있는 가지런한 사명감에도

한 번씩은 우쭐대고도 싶은 날들도 있으니

늙은 호박과의 친분이 새삼스럽기야 하지만

갈치인들 어떻고 고등어인들 나무라겠는가?

그저 호박과 어우러져 등짝 시린

이 세월의 무게 만큼만

허리 깊숙히 지지고 있다보면

뒤척이지 않아도 가슴이 벌써 빨갛게

농익지 않았겠나

기다림의 끝은 이렇듯 촉촉한 가을비처럼

스며드는 맛이였음을 오래 잊고 살지 않았겠나.

 

 


 

김옥종 시인

1969년 전남 신안 지도에서 출생. 2015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민어의 노래』 『잡채』 출간. 한국인 최초 k-1 이종격투기 선수. 현재 광주에서 전업 요리사로 활동 중.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