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진주 시인 / 푸른 무대
핑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점 속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뜀뛰는 라켓으로 내리꽂는 회전으로 상대를 향해 파고드는 파고들어서는 속수무책이 되려 하는 상실의 점수, 받아치지 못하면 실연이다
판이 끝나는 게임 포인트였다면 망연자실이다
스피드하게 찍고 날아가는 너와 나의 점수들 주고받는 실점들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깨끗한 듀스
처음부터 빈틈 노리고 찔러 넣는 빈틈없는 무대에서 사소한 약점은 치명을 부르지만 결점이 방어되는 순간 승패는 또 다른 흥행이다
엎치락뒤치락 접전 벌이면서 돌진하다가 유쾌해지다가 휘어지는 스매싱 백핸드의 절정을 지나 멀리 튄 공 찾으러 가는 사이
혼자 서성거리는 푸른 무대의 날들
고은진주 시인 / 알레르기
봄을 한 상 차려 먹은 듯 목덜미에 꽃이 핀다
화끈하게 봄의 기슭이다
체온조절 못 하는 어느 날 긁으면 손톱의 파종인 양 무한대로 번져나가는 꽃들 덮어두자, 해놓고도 긁적긁적
알레르기라는 말 아프고 가렵다 어린 날에 두고 온 친구처럼 숨었니? 숨었다! 머리카락 다 보이게 간질거린다
알레르기, 하고 부르자 손목에서 긁힌 대답이 삐죽삐죽 돋는다
외롭거나 적요한 곳만 골라서 돌아보라는 듯, 와서 만지라는 듯 알레르기가 생기는 곳은 대체로 열려 있는 부위다
강아지 털 부르는 소리가 따가워서 그만 긁어 부스럼
발진은 발작보다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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