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해 시인 / 이별 협곡
먼저 지하철을 내리던 사람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남은 사람이 역을 빠져 나갈 때까지 혼잣말이 터져 나오는 이별의 방언은 섭섭한 손짓 같아서 그렇게 허공을 흔들리게 하는, 밖은 꽃들이 흔한 철인데 말이죠
이런 날, 몸이 기우는 사람을 불러내어 벛꽃 툭 터져 휘날리는 창밖을 무한반복으로 내다보며 분홍색만 이야기했습니다 찻잔을 잡는 손이 자꾸 떨어지는 것이 꽃에 닿으려는 듯 어스름이 되어서야 일어나 횡단보도를 건너 뒤돌아본 그때까지 손을 흔들어 그 손, 벚꽃잎과 섞여 색다른 꽃잎만 같았습니다 휘날리듯 오래 서있는 한 사람 그림자가 이미, 적색이 되도록
한 패거리로 떨어지는 꽃잎이 또한 협곡을 이루어 같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무크 『포에트리 슬램』 2023년 상반기호 발표
정하해 시인 / 바리케이드
책상과 의자들이 분해된 채 길에 나앉았다. 누군가의 손을 떠난 이별이 땅을 구르고 있다. 함부로 뜯긴 생살이 적나라하게 해체된 주인은 얼마나 주저했을까 그의 통증이 사물 사이사이 감지되는 무더기 앞을 아무 일 아닌 듯 사람 지나간다. 말짱한 게 하나도 없도록 뜯어 펼치는 것은 생이별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가 지나가고 해가 지나가고, 어둠을 끌어 덮는 저 상처에는 별이 또. 들여다 볼 테지 만, 숨이 끊어진 것들은 아무것도 담으려하지 않겠다. 부러진 발목이 은행나무 아래 앉았다. 창대한 허파를 지키는 건 돌아온 명세서와 지불하지 못한 계약서들이 재활용 할 것에 끼여 동색으로 나대고 있다. 한때 절절했던 사랑을 파쇄 해 버린, 행성의 겨자씨만한 저 일이 얼마나 악을 쓰는지, 은행나무열매는 오지게 열려 풍년인 무렵
계간 『미소문학』2022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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