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범 시인 / 23.5
달과 지구가 몸을 섞을 때 태양은 그들을 비추어 기울기를 엿보고 지구가 바다에 길을 열 때 바다는 엉덩이를 들썩여 푸른 주름 편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혹등고래의 울음소리에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흐른 물의 향기가 젖어 있고 저 빙하 위 밀려가는 훔볼트펭귄의 깃털에는 남극에서 적도까지 이른 생의 역사가 새겨 있다
23.5도는 달과 지구의 사랑 축 해류는 지구의 리듬에 따라 물결 나누고 대류는 달의 입김에 따라 계절 바꾼다
해류가 토해낸 향기 바람이 숙성한 영토 기울기에 기댄 생명의 순리
부비새의 푸른 발, 인드라 원숭이의 허공 지키려고 달이 차오를 때마다 지구도 꽁지에 힘을 모은다
플라스틱이 바다의 양수를 찌르고 문명이 대지의 사지를 자르는 것은 달과 지구의 꼬리를 뽑아 생명의 축을 없애는 야만
이제는 너의 무게가 생의 마지막 자전에 닿기 전 23.5를 지킬 마지막 시간 네 자손도 기댈 푸르른 기울기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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