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 / 신춘문예 시상식
맨발의 말더듬이들 모여 또 한 번 애도를 갱신한다. 외롭고 쓸쓸한 얼굴들을 확인하는 연례행사 눈도장 찍느라 밝혔던 눈빛 재빨리 거두고 미소 짓느라 올라가 실룩거리는 입꼬리 잡아내리고 이대로 헤어지기 허전해 밤 카페에 몸을 묻는다.
말없이 인적 드문 거리를 내다보다가, 문득 서로의 시든 담뱃잎 같은 얼굴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왜 이렇게 유통기한 지난 우유 같으냐고 왜 이렇게 꽃가위 닿은 자리가 무르기 시작한 꽃, 이끼 낀 꽃병의 냄새나는 물 같으냐고 제각기 셀카 사진을 쓰다듬으며 누구 들으라고 또 한 해 견디고 살아남으라, 격렬하게 살아남으라, 비장한 덕담처럼 진부한 농담 건넨다
불면을 기꺼이 욕망의 차용증으로 써주었으니 말 더듬지 않고는 한 밤도 잠들지 못하리라 외로움 더욱 막막하라, 쓸쓸함 더욱 아득하라, 진눈깨비가 더듬더듬 시린 어둠의 발꿈치를 적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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