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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정란 시인 / 신춘문예 시상식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1.

최정란 시인 / 신춘문예 시상식

 

 

        맨발의 말더듬이들 모여 또 한 번 애도를 갱신한다.

        외롭고 쓸쓸한 얼굴들을 확인하는 연례행사

        눈도장 찍느라 밝혔던 눈빛 재빨리 거두고

        미소 짓느라 올라가 실룩거리는 입꼬리 잡아내리고

        이대로 헤어지기 허전해 밤 카페에 몸을 묻는다.

         

        말없이 인적 드문 거리를 내다보다가, 문득

        서로의 시든 담뱃잎 같은 얼굴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왜 이렇게 유통기한 지난 우유 같으냐고

        왜 이렇게 꽃가위 닿은 자리가 무르기 시작한 꽃,

        이끼 낀 꽃병의 냄새나는 물 같으냐고

        제각기 셀카 사진을 쓰다듬으며 누구 들으라고

        또 한 해 견디고 살아남으라, 격렬하게 살아남으라,

        비장한 덕담처럼 진부한 농담 건넨다

         

        불면을 기꺼이 욕망의 차용증으로 써주었으니

        말 더듬지 않고는 한 밤도 잠들지 못하리라

        외로움 더욱 막막하라, 쓸쓸함 더욱 아득하라,

        진눈깨비가 더듬더듬 시린 어둠의 발꿈치를 적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최정란 시인

1961년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두실역 일 번 출입구〉 당선  등단. 시집으로 『여우장갑』 (문학의전당, 2007), 『입술거울』( 문학수첩, 2012), 『사슴목발애인』( 산지니, 2016) 이 있음.  2008년 부산작가회의창작기금. 2009년 제1회 요산창작기금. 2016년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수혜,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수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