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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은호 시인 / 변두리의 감정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31.

김은호 시인 / 변두리의 감정

 

 

1.

 

저녁의 입구에 다리가 놓여 있다. 기울어진 가로등 불빛은 어둠의 근원에 골몰하고 있다. 이곳 언어의 대부분은 빛의 반대편에서 허우적거린다. 흐린 물의 감정에 일침을 박는 불빛.

 

거리의 촛불과 깃발을 하나의 꽃다발로 묶으려는 마음을 우울이라고 해야 하나? 틀딱이라고 불러도 아무도 아프지 않다. 아무튼, 시는 우울의 틀니가 아니다.

 

2.

 

자본은 인간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허기 속을 전전한다. 분리수거함 속에 영혼을 처넣는다. 눈먼 소비, 일회용 인생이 쓰레기로 채워질 때까지 전진, 멈출 수 없는 전진. 대낮에 켜진 반달처럼, 줄 빠진 기타처럼, 터널의 비명처럼 시간은 편안하지 않다. 나는 누가 걸어오는 싸움인가.

 

3.

 

노을과 죽음 사이에 시를 곡해하는 구름이 걸려 있다. 다리에 멈춰선 시간이 길어지고 구름은 진부해진다. 명지산 쪽 하늘에서 노을 한 무리 75번 국도로 내려온다.

 

화악천에 성냥을 긋는다.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의 발롱! 작은 반짝임 속에서, 퐁, 퐁, 세상과는 동떨어진 소리로.

 

다리의 서론과 결론을 함께 내려다보는 자에게 내 손을 맡긴다. 풍경이 물컹해진다. 퐁퐁, 은빛 저 절정의 연장을 꿈꾸는, 나는 노을의 발성법으로 노래하는 자, 언어의 빚더미에 올라앉은 자.

 

변두리의 언어가 저녁의 입구에서 튀어 오른다. 바닥을 뚫고, 퐁, 퐁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김은호 시인

경남 진해 출생. 한국 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2015년 계간  《시와소금》으로 등단. 시집으로『슈나우저를 읽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