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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혜리 시인 / 안다고 해도 될까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5.

최혜리 시인 / 안다고 해도 될까

 

 

치매랑 이야기 했다고 치매를 안다고 해도 될까

그와 오래 눈을 맞추었다고, 전신을 목욕을 시켜드렸으므로,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뽀뽀하였으므로, 치매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맛있는 간식을 드렸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노을 진 눈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 변 묻은 바지를 품에 고이간직 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슬퍼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했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치매가 자라는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암모니아향기, 그가 왜 암모니아냄새를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치매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는 집에 가져갈 화장지 보따리가 가득하다

화장지만 보면 감추었다 보따리다 넣곤 한다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수척해진 얼굴로 아들이 오면 남편이라고 애교를 부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최혜리 시인

1959년 강릉에서 출생. 2007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