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황정숙 시인 / 발바닥이 춤을 출 때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5.

황정숙 시인 / 발바닥이 춤을 출 때

 

 

발은 다리가 밀어야 억지로 나갔고

갈 길을 모른 채 걸었다

 

길들의 제자리걸음, 딱딱하게 굳어가는 발끝의 지문

 

가본 적 없는 바닥 다져보기

밟아본 적 없는 시간을  옮겨보기

 

다녀간 모든 걸음이 길이 되고 있다.

지나간 모든 걸음이 걸어갈 걸음이 되고 있다.

다가올 모든 걸음의 방향으로

 

길목마다 표시해 놓은 이정표를 지날 때

 

땅이 발을 잡아당긴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

발이 땅을 잡아당긴다 바닥을 치는 것.

 

발가락 끝에서 생겨나기 전으로 이어지는 길들을

딱딱하게 다져지는 길들을 꺼내 놓는 굳은살

 

발은 첫발을 내딛던 그 느낌을 리듬에 담아

갈 길을 모른 채 걸었다.

 

어떤 직립은 발가락 끝에서 생겨나는 음표 같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황정숙 시인

1962년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 2008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201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엄마들이 쑥쑥 자라난다』(한국문연, 201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