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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과니 시인 / 펜촉 호르몬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12.

송과니 시인 / 펜촉 호르몬

 

 

          타는 불 빨아먹는 피 숭배하는 부족은

          입이 없다. 그럼에도

          너덜의 나라에서 불리는

          노랫가락의 음표가 된 자갈돌들.

           

          그 악보 속에서 기름지고

          윤기 나는 오선지에 합선돼

          전깃줄에 발이 묶인 참새들

          화려한 지절거림이 횡단보도의

          흑백 건반 울리며 건너갈 때

          이 도시의 얼굴은 귀만 달려 있다.

           

          그래서 눈이 멀어 정시정각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는 시곗바늘.

          때문에 태양의 출처도 모르는

          맥박들, 공기들, 호흡들.

           

          저 펄럭이는 눈빛들에 데였다.

          돌이키다 급기야 달아오른

          잉크의 혈압이 뿔 꼭대기를 친다.

           

          각별하고 희귀한 곳으로부터

          발화한 것이다. 타는 불

           

          양식으로 일용하는 피에서 길어온

          극치를 빈혈 백서(白書)에게

          꼭 짚는 초점으로 수혈하는 펜촉.

           

          그렇다. 하얘진 영토로

          돌아온 화상火傷이

          입이 없는 입술로 솟는 화산 빨아댄다.

 

계간 『시산맥』 2018년 겨울호호 발표

 


 

송과니 시인

2002년 《현대시》신인추천작품상을 통해 등단. 2015년 시집 『도무지』를 발표하며 다시 등단. 백제예술대학교 극작과 졸업. 2010년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으로 『밥섬』(2016)과 『내 지갑 속으로 이사 온 모티브』(2017)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