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시인 / 근처를 앓다
어떤 사람의 가슴 한가운데 들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서성이는 호수에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파문 같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리는 콘트라베이스 저음 같은 근처, 라는 아픈 말.
화들짝 물러나 종소리를 앓으며 냉가슴의 저녁을 맞이하고 딱지 앉은 절망의 새벽을 여는 말.
'그곳’이 아닌, 근처 내가 근처를 맴도는 건 발이 오래전부터 해 오던 흑담즙질 얘기. 그 얘기는 상처가 되어 발바닥에 못 박히고 바람이 뜨거운 상처를 악보처럼 명랑하게 연주할 때 가슴에서는 건강한 구름들이 피어나곤 한다.
이를테면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두루마리구름 그 구름들은 참담도 웃음으로 간직한다지 이제 구름의 근처에서 산뜻하게 책장을 넘길 줄 아는,
이 가을 나는 또 무엇의 근처일까
격월간『현대시학』 2018년 11~12월호 발표
정선 시인 / 곱사등이의 노래
나는 네안데르탈의 후손 무언가가 한참 결핍된 종자 이를테면 굽은 등뼈가 고혹적인 척추동물
등에 화사한 혹 하나 달고 산다. 혹은 화를 내거나 귀찮은 내색을 하면 몸피보다 더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는 침묵으로 성벽을 쌓는다. 불면의 밤을 건너고 나면 투명한 불안과 죽음이 석류알처럼 쏟아진다.
나는 석류알을 손으로 받을 용기가 없다.
이쁘다, 이쁘다. 문드러진 속을 감추고 빈말에 웃음을 보이면 제 크기를 줄인다. 아름다워져라, 아름다워져라. 쓰다듬고 보듬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문득 미움이 솟구치고 원망스러워 콘크리트벽에 문지르면 살은 쩍쩍 갈라지고 피멍이 들고
나도 살고싶다고! 애끓는 외마디 비명이 뼛속 깊숙히 박히고 저 흉물도 내 살과 뼈인지라 밤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이 긴 방콕을 되뇌인다. 끄롱텝 마하나컨 보원 랏따나꼬신 마힌따라 아유타아 마하딜록 뽑롭따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 랏차니우엣 마하싸탄 아몬삐만 아와딴싸티 싸카따띠띠야 위쓰누깜쁘랏씨
어칠비칠 불경 속으로
불경은 메타세쿼이아 길로 푸르게 이어지고 무감 쪽으로 해를 등지는 서쪽으로 자꾸만 기울어지는 혹을 속수무책 바라만 보며 나는 내가 불쌍해서 운다. 마르메의 전설, 보따리 장사를 하다 장출혈로 즉사한 울 엄마. 그 피같이 귀한 포도주를 마시며 운다. 엄마처럼 징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또 한 잔.
저것은 얼룩이 아니야 저것은 내 등불이다. 저것은 내 숨구멍이다.
다독여도 삶은 늘 묘사가 부족하다. 묘가가 그리운 삶은 종이파이처럼 아슬아슬하다. 제 치유의 독을 품은 노니가 향그러워질 때까지 혹이 등뼈를 뚫고 오목가슴 속으로 스며들기까지 얼마나 더 물색없이 떠돌아야 하는지.
계간『시와문화』 2018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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