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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종기 시인 / 解剖學敎室(1)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14.

마종기 시인 / 解剖學敎室

ㅡ 조용한 凱旋 1

 

 

재생(再生)하는 환희(歡喜)에 넘쳐

넘쳐나는 개선가(凱旋歌).

여기는, 먼 먼 시대(時代)로 부터 시작하여 눈 먼 몇 십대(十代)의 할아버지때 부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우리의 감격(感激)을 풀지 못하는 나약한 꽃밭.


여기는 또 조용한 갈림 길, 우리는 깨끗이 직각으로 서로 꺾여져 가자. 다시 돌아다 볼 비굴한 미련(未練)은 이제 팽개쳐 버리자.


갑자기 너는 무엇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 오랜동안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던, 영원한 향수(鄕愁)가 익어 있는 어머니의 젖가슴, 너는 다시 우리를 낳아준 본래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돌아가야 한다.


허면, 우리는 고운 매듭을 이어주는 숨소리를 음미(吟味)할 때마다, 살아있는 보람이 물결일어 넘쳐나는 개선가(凱旋歌)를 불러준다.


여기는 먼 먼 시대(時代)로부터 시작하여 단 한번의 서정(抒情)을 느껴보는 스스로의 꽃밭.

조용한 개선, 1960

 

 


 

 

마종기 시인 / 解剖學敎室

ㅡ 조용한 凱旋 2

 

 

  참, 저 애 좀 보라.

  꼬옥 눈 감고 웃고 있는

  흰꽃으로 가슴 싼 저 애를 좀 봐라.

 

  여기가 무덤이 아닐 바에야

  우리는 소리없이 울지도 못하는데

 

  모서리까지 가자고만 하다가

  끝내는 모두 지쳐 버린 곳.

 

  네 살결이 漂白되어

  天井의 흰 바탕 보아라.

 

  너를 얼리던 少年들은

  하나씩 외로운 척 비실대며 가고

  수집어 눈 못뜨는 少女야 말 해봐라.

 

  전에는 終日 山을 싸돌고,

  꽃 따먹어, 색깔 있는 침을 뱉어

  저 냄새, 내리는 햇살 냄새에

  난 웃기만 했지.

 

  엄마야, 그대는

  달디단 엄마 젖 예쁘더니

  이젠 엄마 닮은 내 젖이 부끄러워.

 

  모두 없이 나도 어린애 되면

  엄마 젖가슴에 다시 머리 파묻고

  괴롭던 어린 날을 울어버리면.

 

  우리는 두 손

  숨을 멈춘다.

  꽃 향기가 방안을

  회오리 돈다.

  피는 香氣가 고웁다.

 

  아, 우리는 내 앞에 바로 서도

  더도 없이 두 손,

 

  저 애 좀 봐라.

  그래도 볼우물 웃고

  우리 차거운 손바닥 위에

  헤어지는 아늑함을 가르쳐주는

  저애, 꽃순 같은 숨소리 들어 보아라.

 

 


 

 

마종기 시인 / 나도 꽃으로 서서

 

 

  소담스런 꽃병에

  나도 한 가지 꽃으로 서서

 

  감빛의 硏硏한 노래 속에 서서 보면

 

  우리는 지금도,

  끝없는 移住民이었구나.

 

  얼마는 꿈 속을, 구름 속을,

  얼마는 音樂 속을

 

  그리하여 얼마는 定着 속을 헤매는

  끝없는 移住民이었구나.

 

  다정한 친구여, 보려무나.

  살얼음 속에

  떨고 섰는 碑石

 

  어질도록 고운 碑石 앞에서

  나는 些少한 모든 生活을

  告白해야겠다.

 

  퍼붓는 눈보라 속에서, 뙤약볕 속에서,

  낙엽 속에서, 눈발 속에서

 

  비석은 그 오래인

  默視와 念經.

 

  지금 모든 것은 나에게 멀어져가고있다.

  웃으면서 쳐다보는 거울 앞에서,

  하나씩 죽어가고 있다.

 

  보려무나. 다정한 친구여,

  비 씻기운 하늘에서

  마침 노을은 피어나 우리를 놀래듯이

 

  그간에 나는 꽃으로 서서

  보고만 있었구나.

 

  나도 한 가지 꽃으로 서서

  기꺼이 흔들려 보노라면

 

  우리는 지금도

  끝없는 移住民이었구나.

 

월간 『현대문학』 1959년 1월호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발표 이후 3회 추천 완료

 

 


 

마종기 시인

1939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 연세대 의대 및 서울대 대학원 졸업. 월간 『현대문학』 1959년 1월호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발표 이후 3회 추천 완료되어 등단. 시집으로 『조용한 개선(凱旋)』, 『두번째 겨울』, 『변경(邊境)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등의 시집과 공동 시집 『평균율』Ⅰ·Ⅱ이 있음.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