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철 시인 / 꽃천지, 감기
꽃샘바람 추위 속 온종일 꽃구경하고 들어와 누우니 밤새 신열 나고 허공에선 윙윙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 꽃 저 꽃 뺨 부비던 벌 나비들 귓바퀴 속 들어와 부산한 소리. 꽃천지 더불어 이 몸과 마음을 돌리는 봄의 엔진 소리.
언젠가 큰 배 타고 먼 바다로 나가다 기관실에 들어가 듣던 소리. 첫사랑 처음 손잡았을 때 손가락 끝까지 쿵쾅거리던 가슴속 소리.
하르르 하르르 지는 꽃잎들 간다는 말도 못 이르고 오소소 먼 우주로 떠나는 소리.
생각들 흐릿하게 빠져나가는 꼭두새벽 텅 빈 머릿속 저 먼데서 휑하게 들려오는 천지간 엔진 소리.
계간 『미네르바』 2018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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