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시인 / 걷다가 멈추면
걷다가 멈추면 당신이 쏟아졌다. 쏟아진 당신은 밀가루 풀처럼 희멀건 했다. 식물원에서 진고개까지 걷다가 멈추면 늦은 봄이었다. 두 번의 겨울이 가고 청계천에서 발꿈치가 갈라졌다. 백태 낀 발꿈치를 보면서 당신은 한참을 웃었다. 걷다가 멈추면 손바닥에 꽃씨가 흥건했다. 먼 곳까지 날아간 당신을 주워와 책갈피에 꽂았다. 걷다가 멈추면 옛날의 계절이 쏟아졌다. 걷다가 멈추면 별비처럼 당신이 흘러내렸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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