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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밝은 시인 / 폭풍의 언덕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30.

김밝은 시인 / 폭풍의 언덕

ㅡ캐서린의 말

 

 

구부러진 노래라도 부르게 차랑차랑,

자작나무 잎사귀들 허공에 쌓아놓고 ⋯

 

이제 당신을 떠날 몸짓을 내보여야 할

비장한 날이다.

 

꼬깃꼬깃 구겨져버린 종이처럼 펴지지 않은 마음을

희미하게 조차 읽어내지 못해

새까만 신음으로 주저앉는 목숨

 

신의 눈길을 벗어났던 운명에

새파란 해가 떠도 심드렁했던

몸 안의 세포들이 날 선 촉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더는 혀를 간질이며 잠들었던 저녁을 꿈꾸지 않게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독설을

웅크린 심장 한가운데 겁 없이 들여놓겠다.

 

으르렁거리며, 소용돌이치는 시간 속에

으스러지는 비명쯤 순순히 내려놓고

 

상처 속에서 자라는 선명한 눈물의 틈새마다

차오르지 않는 초승달 같은 시詩, 시들만

오래도록 껴안고 길들이겠다.

 

잠시 등을 기댈 한숨조차 주어지지 않을 백야의 시간이 오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김밝은 시인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으로 『술의 미학』이 있음.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현재 미네르바 편집위원, 월간문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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