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세복 시인 / 드라이플라워
밤잠 잃은 나는 그 밤도 꽃밭을 헤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더듬이는 끄떡없다. 지팡이처럼 두드리다 발견한 것은 꽃밭 속 숨죽이고 있는 한 묶음 꽃다발, 누군가 여러 해 동안 날 엿보았던 것이 틀림없다. 조심스레 꽃다발을 한 잎씩 넘긴다. 그때마다 갖가지 향기, 그것은 언젠가 입 언저리 한 번씩 묻혔던 꽃가루 내음, 낙화가 두려웠던 시절의 땀 냄새 같은 것, 꽃잎은 하나같이 촘촘히 짜여 있다. 풀섶에서 만나는 거미줄 날개처럼 혹은 가을볕 익어가는 끈적한 벌집처럼-누구든 제 생애를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완벽한 구조, 더듬이가 꽃향기에 중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점 비대해지는 입술, 진찰만 무성할 뿐 누구도 제대로 치료해줄 수 없다. 습관처럼 새벽이 찾아오고 그것이 검은꽃 묶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초로를 기다려 핀다는 검버섯꽃 뭉텅이, 그가 오래 전 툭 던지고 간 꽃다발 한 묶음. 이제는 서서히
웹진 『시인광장』 2018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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