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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종영 시인(청주) / 슬픈 야생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30.

박종영 시인(청주) / 슬픈 야생화

 

 

캄캄한 입술을 더듬어 꺼끌꺼끌하게 마른밥알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목젖의 떨림과 긁힘의 미약한 소리

너의 열린 몸속으로 내가 들어간다.

꽃이 피듯이

꽃이 지듯이

겨드랑이 깊숙한 곳을 간질이며 소리 없이 조용히 움튼다.

함몰되는 꽃의 눈동자 속에서 흘리는 소금물 뚝뚝 받아내며

풀어지듯이 깜빡깜빡 지워지고 있는 그녀

꽃 진자리에서 질척이며 와글와글 울고 있다.

당신이 까만 밤 속에서 하얗게 피어날 때까지

 

-시집 『서해에서 길을 잃다』에서

 

 


 

 

박종영 시인(청주) / 서해에서 길을 잃다

 

 

바다의 어깨가 좁다

검은 양복의 재봉 선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길

유난히 손금처럼 가늘고 긴 길에서 서해바다를 만났다

넘치는 방파제의 턱 선에서 거품처럼 게들을 게워낸다

살을 섞다만 게들이 옆걸음질 치고

산산이 부서지는 뼈의 마디 낡은 음들

심장 깊숙한 복도 끝에 박혔다.

누군가 따끈따끈한 심장을 썰고 있나보다.

중심이 텅 비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서해바다

한 송이 꽃이 꿈을 키우며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그곳

귀퉁이를 잘라 그 안에 방을 만들어

진하게 마음을 나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끈끈한 정으로 손을 잡고 살아가야 할 땅

맨발로 하얀 눈 위를 걸으며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주고

젖은 손으로 땅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심장은 서산마루를 넘어가고

새들이 길을 잃은 캄캄한 밤

들풀보다 가벼운 어둠의 이불을 덮고

사정없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옷도 걸치지 않고 무작정 달렸다

바다의 심장이 퍼덕이는 그곳을 향하여

붓을 들고 꽃을 그리다가 그곳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는 내 몸도 줄기까지 빼빼 말라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어둠속에서 몰래 숨어들던 꽃향기

난청이 된 귓속에 파도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올 때면

두 눈이 짓무르도록 서해에서 길을 잃고 싶다

 

-시집 『서해에서 길을 잃다』에서

 

 


 

박종영 시인(청주)

충북 청주에서 출생, 당진 22년 거주. 2007 <대한문학세계> 봄호 등단. 시집 『서해에서 길을 잃다. ‘17년 당진문화재단 수혜』 『우리 밥 한번 먹어요 ‘19년 충남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기금 수혜』 2010 대한문인협회 최우수 문학상 수상. 창작문학예술인협회 정회원. 당진문인협회, 당진시인협회 회원. 현 동아환경산업(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