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여림 시인 / 느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30.

여림 시인 / 느낌

 

 

이렇게 바람이 심한 날이면 느낄 수 있어

사랑은 저로 절절이 몸을 흔드는 나무와 같다는 걸

그 나무 작은 둥지에 새끼새를 품고 있는 어미새와 같다는 걸

그런 풍경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우리 두 마음이란 걸

 

 


 

 

여림 시인 /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흐르는 피 꽉 움켜쥐며 그대 생각을 했습니다.

홀로라도 넉넉히 아름다운 그대.

 

지금도 손목의 통증이 채 가시질 않고

한밤의 남도는 또 눈물겨웁고

살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고 싶습니다.

 

뒷모습 가득 푸른 그리움 출렁이는 그대 모습이 지금

참으로 넉넉히도 그립습니다.

 

내게선 늘, 저만치 물러서 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여,

풀빛 푸른 노래 한 줄 목청에 묻고

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겨웁습니다.

 

 


 

여림 시인 (1967~2002)

1966년 경상남도 거제 출생. 본명: 여영진. 서울예전 문창과 중퇴. 스승이었던 최하림 시인의 이름 끝자를 빌려 필명을 여림이라고 지음.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당선했지만 2002년 11월 16일 타계. 이후 문우들이 시인의 작품을 모아 2003년도에 유고시집 『안개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를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