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태수 시인 / 칼날 고요
‘군더더기 없는 음악이 나올 수 있도록 장애물들 거듭 쳐내면서 연주해가는 모습이 수행자 같아요.’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들도 허공을 헤치면서 갈 길 만들어 나간다. 뒤뚱뒤뚱 걸음마 배우는 아기가 또 그렇게 공간을 확보해 나간다. 음과 음 사이는 그러나 칼날 고요 찰나라 해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간극. 하여 공간의 상처들은 적막이 핥아주고 있으니. 어릴 적 산골에서 놀다가 다친 곳은 찧은 쑥이 아물게 하였지. 한 시간 넘게 피아노와 결투하던 그가 무아에서 풀려나고 있었다. 청중은 침묵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면서도 숨죽이던 허공이 마침내 한숨 돌리지 않을까. 가슴 저 아래서 울컥, 하는 것은 뭘까.
ㅡ『미네르바』 202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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