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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설태수 시인 / 칼날 고요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30.

설태수 시인 / 칼날 고요

 

 

‘군더더기 없는 음악이 나올 수 있도록

장애물들 거듭 쳐내면서 연주해가는 모습이

수행자 같아요.’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들도 허공을 헤치면서

갈 길 만들어 나간다.

뒤뚱뒤뚱 걸음마 배우는 아기가

또 그렇게 공간을 확보해 나간다.

음과 음 사이는 그러나 칼날 고요

찰나라 해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간극.

하여 공간의 상처들은 적막이 핥아주고 있으니.

어릴 적 산골에서 놀다가 다친 곳은

찧은 쑥이 아물게 하였지.

한 시간 넘게 피아노와 결투하던 그가

무아에서 풀려나고 있었다.

청중은 침묵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면서도 숨죽이던

허공이 마침내 한숨 돌리지 않을까.

가슴 저 아래서 울컥, 하는 것은 뭘까.

 

ㅡ『미네르바』 2022 가을호

 

 


 

설태수(薛太洙) 시인

1954년 경남 의령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열매에 기대어』 『푸른 그늘 속으로』 『소리의 탑』 등이 있음. 공간시낭독회 상임 시인. 성균문학상 수상. 현재 세명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