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리 시인 / 유품 편지
효자손의 엄지와 검지가 부러져 있다
잘못 내린 버스 정류장처럼 장의사 간판만 빼곡한 길 건너편 골목 신비주의 요양원
잠금장치 문 앞에 서서 전화 호출 버튼을 누른다
ㅡ누구세요? ㅡ알선자입니다
할머니가 남겨놓고 간 효자손을 벗긴다
갈퀴에 돋보기안경 닦는 천을 씌워 휜 곳과 아래를 고무줄로 꽉 묶은 채 대패삼겹살 같은 등을 살살 문질러 온
나무 빗발이 내리칠 적마다 힘줄 움켜쥔 지팡이의 말엽
부러진 엄지 밑에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부러진 검지 밑에는 장손이라 적힌.
이승리 시인 / 패
노름 속에 싸여 쟁여둔 돈이 흩날릴 즈음 21인치 티브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급한 대로 라디오를 가져온 아버지는 머리맡에 에프엠을 켜둔 채 잠들었다 나는 맥 빠진 테이프 덮개를 꽉 눌러보고 쭉 당겨보다 발치하듯 부러뜨리고 말았다 집어삼키려 자신을 노려보는 두 눈처럼 아버지는 불호령 치며 라디오를 내던졌다 반지하를 날다 선반과 충돌한 클로징 멘트 박살 난 주파수를 재생할 순 없었다 나는 심박수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날의 패 위로 시가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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