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선 시인 / 꽃핀다
햇살 내려 꽃핀다 오종종 앉은 자리꽃, 꽃핀다 뻔했다, 꽃핀다
불보듯 꽃핀다 불꽃 피듯 꽃핀다 손바닥만한 물웅덩이 해뜬다
고것, 땅따시더니, 달뜬다 이내 살구 나뭇가지 불붙는다 뿜어져 오르는 피
문봉선 시인 / 앵두나무
‘구쭈베니 바르면 부끄러버서’*
꽃봄에 붉은 앵두열매 맨입술 열적마다 달콤한 향기로 초록세상 자지러진 적도 있었다 말을 할 때나 웃을 때 수줍은 듯 두 손으로 가리고 밥을 먹을 때도 입을 크게 벌리기는 커녕 오물내밀어서 요조한 숙녀라 칭했다.
꽃이 먼저피고 잎이 뒤에 나오는 상사화相思化, 꽃과 잎은 서로 보지 못하는 앵두나무꽃 피었다 지고, 어느 해부터 꽃도 피지 않고 뿌리 밑에 벌레가 들끊기 시작한다. 잔기침 후 잎 떨어진 그자리그늘엔 보라색 제비꽃자릴 틀었다, 햇빛은 니네몫이라며 비워두고.
피가 돌지 않는다고 시름시름 피멍든 한쪽가슴 쓸어내리며 정강이 아래 물관이 막힌 앵두나무 무릎관절염 수술 후에도 오래 앓았다. 이미 절반 고목이 되어 봄이 와도 열매는 커녕 새잎조차 터뜨리지 못한다.
오물오물 오남매 누가 먼저 밷어 내지 못하고 앵두나무 뽑아내 버려야겠다고 벼르기만 하다가 살갗 앙금 걸러낸 팥 껍데기 마냥 까츨까츨 애써 눈길을 외면 한다.
날씨가 항상 맑거나 흐리지만 않다 골목길 휩쓸고 다니는 달빛 흐릿한날 저녁 하늘엔 흐린 별 하나 나무잎 입 비비는 어눌한 소리 엿듣는다.
어머니의 통증으로 앵두나무와 교신한다. 그 별을 보기 위해 흐린 눈을 감았다.
*구쭈베니 : 입술연지의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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