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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다혜 시인 / 콩밥 먹다가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3.

정다혜 시인 / 콩밥 먹다가

- 딸아이에게

 

 

저녁밥 짓는데 넣으려는 검정콩 한 줌

물에 불렸는데도 단단하다

어디 단단한 슬픔이 있던가?

콩은 뜨거운 입김 만나 순해지다

쌀 속에 숨어 차진 콩밥 만들었다

콩밥을 싫어하여 콩만 골라내던

눈 맑은 그 아이 생각에 목이 메고

잊고 살았던 슬픔의 오장육부에

검은 콩알들 산탄처럼 박힌다

아이는 그해 여름 길 위에서

콩 꽃처럼 피었다 떨어졌다

무심히 콩밥 담는 저녁밥상에서

다시 만나는 검은 화인火印

여태 너 나하고 살고 있었니?

내 안에서 너, 콩처럼 살고 있었니?

너 묻고, 나는 평생 콩밥 먹는 죄인이었는데

너 묻고, 나는 평생 콩밥 먹는 슬픔이었는데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 고요아침, 2007.

 

 


 

 

정다혜 시인 /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탄생

 

 

늘 물어보셨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행복하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던져 놓곤 했다

"응!"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늘 원하는 것을

늘 바라던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기때문에

 

늘 물어보셨다

 

뭐가 그리좋은지

무엇 때문에 행복한지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던져 놓곤 했다

"그냥~ 다!"

 

나의 선택엔

이유가 없었다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없었다

늘~

 

나를

그 고요한 눈빛

그 깊은 심연속에 담아

핑크빛 사랑으로 물들이던

엄마의 선택엔

늘 이유가 있었다

너만 좋으면 되었다

너만 행복하면 그걸로

다~ 되었다.

 

엄마의 선택은

나를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만들었다

 

늘~

 

 


 

정다혜 시인

1955년 대전에서 출생. 200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길 위에 네가 있었다』(드라마, 2005)와 『스피노자의 안경』(고요아침, 2007)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충남시인협회 회원. 독서 논술사로 활동중. 열린시학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