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박석구 시인 / 하루에 한번쯤은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3.

박석구 시인 / 하루에 한번쯤은

 

 

하루에 한번쯤은 혼자 걸어라

세상 이야기들 그대로 놔 두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라.

 

말이 되지 말고

소가 되어

나에게 속삭임 혼자 걸어라.

 

괴로움이 나를 따라오거든

내가 나에게 술도 한잔 받아주고

나를 다독거리며 혼자 걸어라

 

나무도 만나고 바람도 만나면

마음은 어느 사이 푸른 들판

 

잊었던 꽃들이

피어나고

고향 내음새 되살아나

내 가슴을 울리는 나의 콧노래

 

하루에 한번쯤은

이렇게 나를 만나며 살아가거라

 

 


 

 

박석구 시인 / 2월 대나무 카페

 

암탉 한 마리

꺾인 피마자가 떨군 씨를 쪼다 갔다

대밭 언저리 곤궁이 가득한 호박이

댓잎차를 바닥에 겨우 깔고 썩고 있다

게으름을 끌고 온 고양이가 핥다 고개를 저으며

지나갔다

마른 개똥이 지키는 두더지 굴속에

사촌누이 눈물이 한 가득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그녀는 지금 달래 하우스에서 일하는 중이다

동박새 무리가 수다를 떨다가

멍울진 동백꽃을 살피러 우르르 몰려갔다

치매 초입인 아버지는

6·25때 군대 안 갈려고 땅굴을 팠다는데

거기에 임화의『현해탄』시집을 두고 왔다는데

곰밤부리만 무성해지고 있다

작년에 벤 대 뾰족한 밑동을 밟아 통증이

눈물로까지 번져 내려다보니

철모른 지렁이 기어가고 있다

그제야 구름에서 비껴난 햇살이

버려진 댓잎들과 입을 맞추어댄다

 

-2015, 『문학에스프리』 봄호

 

 


 

박석구 시인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11년 <격월간 에세이스트>에 수필 등단. 2015년 <문학에스프리>에 시 가 당선되며 등단. 시집 <바위여> <내가 나에게 이르는 말은>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깨진 장독 속에 하늘을 담아 놓고>. 시선집 <하루에 한번쯤은 혼자 걸어라>. 현재 익산 남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