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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려원 시인 / 식물성 단어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8.

식물성 단어

김려원 시인

 

 

한 권 노트에 식물성 단어를

가리지 않고 심었다

제목을

‘풀밭’

이라고 세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식물성 단어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어제 들은 말이 저만치 자라있으니 내가 한 대답에서는 빨갛거나 노란 변명이 피어있을 거다.

 

모든 대화는 과정일 뿐이므로 질문과 대답 사이로 다리 하나를 잃은 고양이가 지나가고 감자꽃이 피고 진딧물과 개미가 어느 맨발 같은 의견 사이를 지나가겠다.

 

너와 나를 뒤섞어 말할 수 있겠다. 저렇게 엉키고 넘어져도 섞이지 않는 씨앗들, 봄과 여름을 긴 소문으로 채우고 나서 누렇게 마르겠다, 가을, 그래서,

 

겨울잠 자려는 말들을

다섯 살의 입술로 배워야겠다.

 

겨울 풀밭을 다시 적어야겠다.

 

질문과 대답 사이로 유리창에 흰 꽃 흐드러지고 볼과 볼에 가랑눈 물들면 파스텔화에 접어든 불면의 뒤척임이 빼곡하게 자라날 거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김려원 시인

2017년 《진주가을문예》 당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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