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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춘 시인 / 수평의 힘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9.

이영춘 시인 / 수평의 힘

 

 

        나는 수면 속에 물고기처럼 잠겨서

        나를 건져 올리지 못하네

         

        빗방울 속으로 흐르는 여린 풀잎들이

        슬픈 레퀴엠의 악보처럼 뛰어오르는데

         

        요만큼만 차 오른 물결처럼

        내가 허공 속으로 자꾸 점프를 해도

        내 그릇은 요만한 크기의 빈 공기

         

        내 창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달려가는

        빗방울 소리, 소리의 발자국들

         

        아득한 강 저 하구를 안고 도는 물안개와

        산그늘을 덮고 있는 구름의 입술들

        그 입술들의 수런거리는 숨소리 만큼

        내 호흡이 머물고 있은 이 지상

        내 작은 님프가 살고 있는 이 영토

         

        나는 물고기처럼 수면에 가라앉아서

        나를 건져 올릴 수가 없네

 

계간 『시산맥』 2018년 가을호 발표

 


 

이영춘 시인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시포스의 돌』, 『귀 하나만 열어 놓고』, 『네 살던 날의 흔적』, 『슬픈 도시락』』,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와 시선집『들풀』『오줌발,별꽃무늬』 등이 있음. 윤동주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인산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동곡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