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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혜 시인 / 누에고치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9.

누에고치

김신혜 시인

 

 

          비료를 먹고 환해지고 있다

          더부룩한 기분에 휩싸여

          움직일 수 없다

           

          자기 몸집만한 상자에서

          웅크린 채 자고 있는 개 한 마리

          일인분의 기분

           

          이 광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탈피를 부추긴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라붙은

          번데기들처럼

          껍질이 벗겨지고 날개가 돋고

           

          전구에 불이 켜진다

          번데기가 끓고 있는 냄새를

           

          참기 위해

          입덧을 하고 누군가를 속이고

          실뭉치를 토해낸다

           

          곤충도감의 세계에서

          한 단계씩 기대를 저버리는 일

          기념일을 건너뛰는 일

           

          책에 깔린 벌레가

          버둥거리는 방향으로

          습기가 찬다

           

          출구를 잊어버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김신혜 시인

2018년 《시인동네》 를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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