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서 시인 / 안경
안경을 어항이라 말하는 늙은 소년이 있다 그는 여기다 송사리와 갈겨니 버들치 치어들을 키운다 살얼음 낀 들판과 초겨울 거리의 꽃배추도 키운다
그의 어항은 새장도 자전거도 아니지만 부엉이나 백일홍, 사막의 달까지 그가 몰래 키우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식전의 포만과 식후의 공복 사이에 그가 놓치곤 한다는 그 작은 물고기들은 들을 지나는 개울 따라 강으로 가는가
소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저녁이 흘러나오는 서랍에 있나 다른 안경을 가진 낯선 이로 서있나
그를 기다리는 어항은 풍경을 한정하는 말랑한 갈색 수정체, 이음새 없는 고요를 안고 있다 문 닫은 날의 인공호수처럼 표지만 남아있는 두꺼운 이야기처럼 비밀스럽기도 하다
월간 『현대시』 2018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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