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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윤미 시인 / 체크 코트를 입을 때 만나는 사람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5.

강윤미 시인 / 체크 코트를 입을 때 만나는 사람

 

 

    체크 코트를 입고서야 당신을 만날 수 있었지

    몇 번 만난 건 아니었는데

    당신을 만날 때마다 체크 코트를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이제 당신과 나, 체크무늬는 단단하게 묶여서

    줄무늬 재킷이라던가 빨간색 블루종 같은 것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 되었지

     

    보고 싶어, 당신은 말했지만 나는

    체크 코트는 추운 겨울에 입는 거라 안 된다고 했지

    이제 겨울바람과 서린 공기, 침잠하게 내려앉은 구름 없는 하늘은

    당신, 하면 떠오르는 것

    당신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 넣으면 눈꽃이 활짝 피어오르면서

    웃음이 내려앉을 것 같아

    우리 둘은 겨울이 끝나지 않기를 기대했지

     

    갈색과 검정이 섞이고 가로와 세로의 격자무늬가 맞대어서

    체크 코트는 아주 작은 네모들과 큰 네모로 이루어진 마을처럼 보였는데

    당신을 못 만나고도 몇 해의 겨울은 흐르고

    네모로 둘러싸인 미로 속에 갇힌 미아처럼 당신이 보고팠지 보고팠겠지

    당신도 나를

     

    4월에 눈이 오고

    겨울에 찾아온 더위처럼 우리 둘은

    어디서 어떻게 잊혔는지도 모르게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나와 버렸지

     

    이미지로 남은 당신의 흐릿한 목선과 당신에게 스민 나의 목소리,

    같이 먹다 남긴 한 조각 빵과 생크림은

    몬드리안의 그림이 되어 옷장 속에 걸렸네

    체크라는 이름으로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강윤미 시인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