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숙 시인 / 구름의 심사평
한 때 나는 모든 결정들의 심사평을 수집했다
3차원의 구름에 소나기 사선, 밑줄 죽죽 긋던 구름의 심사평이 그 중 압권이었다 말하자면 구름에게도 모퉁이가 있고 지붕들을 대하는 자세도 다 달랐다 그건 지붕 밑의 사람들이 비를 이해하는 방식 엄마는 난리가 났다며 장독대로 뛰어 갔고 나는 앵두꽃이 떨어지는 소리이거나 흙냄새가 뛰어다니는 소리라 했다
돛 하나가 전 재산인 사람과 파종기를 기다리는 들판의 주인 이불호청을 널어놓고 바람을 흔들어대는 빨랫줄 우글우글 지렁이와 뱀장어와 번개가 관절 곳곳에 들어 있는 노인이 구름 명확한 심사자들이다
구름 뒤에는 항상 맑은 날이 있어서 아직 형태가 없는 구름이 지나간다 그건 몇 년 후의 양떼이거나 새들의 깃털, 어머니가 세우신 탑이거나 고양이의 앞발일 수도 있다
지붕 위의 구름은 지붕 밑의 일들을 흉내 낸다 뜬구름 잡고 뒹구는 하루하루가 먹구름에서 꽃구름으로 비구름에서 뭉게구름 오갈 수 있어 악천후들의 심사평도 꼼꼼히 살피고 또 살피는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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