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정 시인 / 손톱에 담긴 달빛
엄마는 우리가 가느다란 손가락에 매달려 달처럼 뜰 때 달 부스러기도 주어 담던 손으로 우리를 기억하고 있지
우리 집은 손톱 예술의 집
엄마가 짓는 예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 개의 손톱에 네일 케어를 하듯 우리들의 상처를 꿰매느라 분주한 일이라 생각하지 상처를 지워 보는 일이 천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아 고아원 창문은 언제나 환하게 열려 있지
엄마가 웃으며 손톱 거스러미를 따뜻한 물에 불리면 부드러운 손가락에서 한 가닥씩 웃음이 열리고 얼어버린 아이들 가슴을 녹이는 일이라고 말했지
아침부터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네일 폴리시로 브러쉬를 천천히 굴려 부풀어 오르는 동생들 얼룩에 무늬를 그리는 엄마
닫힌 성장판을 들여다보며 열 개의 꽃밭을 만들면 눈물방울 하나하나 말리며 지나가는 바람을 만날 수 있지
깨진 손톱에 새 손톱을 붙여 시들시들하던 동생들을 다시 꽃잎 한 겹씩 피워내듯 일으켜 세우는 오늘 한낮은 더디게 흘러가고
손톱을 둥글게 다듬는 것은 사춘기 현기증을 천천히 다독이는 일이라며 엄마는 마당을 쓸고 있지
꽃받침에 강화제를 덧바르듯 손가락 틈으로 비집고 나오는 생인손들에게 미소 덧씌우는 엄마
흔들리는 우리들 옷깃을 여미고 메워주며 엄마의 하루가 고아원 지붕 위로 고이고
계간 『시산맥』 2018년 봄호 발표
오유정 시인 / 바스러진 소리들
다혜가 떠난 후 적막이 찾아왔네 도란거리던 방도 입을 다물었지 자주 찾아와 지저귀던 새들도 잠든 음파를 물고 아무 말이 없네
새들이 날라다 놓은 소리들 그 방에 걸어 놓을 때 손에서 그리움이 바스러지곤 하지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를 먹어야 필 것 같은 저 이야기들, 하나, 둘 피어나기를 기다리는데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쉬쉬 바람소리를 밀어 넣고 있네
먹먹한 방에서 피지 못해 불규칙한 말들 점점 쪼그라들고 있네 문을 열고 미동 없는 소리들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기도했네
계간 『대전문학』 201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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