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겸 시인 / 스테인드글라스
“주차장에 P라는 글자가 왜 쓰여 있을까 평소 궁굼했는데 ‘Parking’의 약자라는 것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나이 쉰이 넘어 중학교에 진학한 어느 분의 말씀 기호가 상징하는 세상이 콜럼버스의 신대륙처럼 열린 한희의 순간이 있네 장님 헬렌켈러가 수화의‘Water’알파벳이 손바닥에 떨어지는 수돗물을 의미함을 알았을 때 새 눈을 얻어 캄캄한 세상을 벗어난 순간이 있네
늙은 만학도와 헬렌 켈러는 알파벳 24자를 불의 뜨거움으로 바라보았겠지 마음에 낙인을 남긴 단어들이 석판에 불로 새긴 십계명처럼 다른 세상의 신성한 문을 여는 황금열쇠로 보였겠지 새 눈을 얻은 인생들은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인 후 세상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 창세기 아담adam의 오만에 이를 수 있을려나
“인간은 기호로 생각하므로 기호가 곧 진리입니다”라고 선지자처럼 열변을 토하는 기호학자의 선언까지 공부할 수 있을려나
10개 국어를 하는 기호 인간의 의식은 어떤 모양일까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하늘의 빛이 오색무지개로 스며드는 퀼트quilt의 화려함일까
무크 『세종시마루』 2018년 발표
김백겸 시인 / 플루토(pluto)의 선물
러시아 수학자가 말했지 인생의 부는 ‘단위 시간당 경험의 질 곱하기 시간’이라고
삼성 이건희와 워렌버핏 같은 CEO를 부자라고 생각했던 통념과는 다른 해석이었지 이 기준을 첨가해 두 거물 사주를 비교하면 말년의 삼성 이건희는 식물인간으로 쓰러졌으니 자선도 많이 하는 워렌버핏이 승자로구나
올 봄에 나는 발작성 심방세동 혈전이 막은 뇌경색으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으니 단위 시간당 경험의 질을 까먹고 있었던 것일까 원래도 부자가 아니었지만 남은 인생마저 부의 총량을 까먹으며 사는 사주팔자였던가 행복을 불행의 깊이까지 받아들이는 단위 시간당 경험 총량으로 해석을 바꾼다면 인생의 부는 시간에 달려있지 고대 중국인들 행복관‘수부귀공명(壽富貴功名)’서열이 보여주듯이
김삿갓 같은 방랑 인생이 만 65세를 통과하면서 여기까지 골골 기어왔지 혈전 용해제 엘리퀴스(Eliquis)를 복용하면서 짐작에 80까지는 그럭저럭 굴러가리라는 생각 그 이상은 플루토(pluto)의 선물이라는 생각
세월이 더 흐르면 내 몸도 노인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가겠지 거기서도 시를 생각할 수 있다면 다른 할 일도 없으니 시나 쓰고 있겠지 죽음 앞에서도 시를 쓰고 있다면 남들이 보기에 꽤 행복한, 페르소나(personna)가 그럴듯한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이겠지 시가 정신을 파먹는 암인 줄도 모르고 평생을 전전긍긍한 와신상담의 인생을
인간이 늙어 육체가 쇠약해지니 죽음은 헤라클레스처럼 근육을 자랑하네 인간의 얼굴에 검버섯이 생기고 주름이 잡히면서 즉음은 핏기가 도는 청년이 되네 인간의 기억이 치매로 흐려지면서 죽음은 일생의 모든 기억을 생생하게 넘겨받는 바톤터치를 준비하네 인간이 황천을 건너 피안에 이르렀을 때 인간은 마침내 죽음의 부활한 얼굴을 보게 되겠지 드라큐라처럼 무無의 시간에서 일어선 얼굴을 불사不死의 얼굴을
오작교를 건너가면 하늘의 초승달 같은 창백한 표정의 염라대왕이 묻겠지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시인입니다
플루토(pluto) :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의 신, 로마시대에는 부(富), 재산이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이중의미 속에는 죽음이 선물한 현세가 부(富)라는 로마인들의 인생관이 숨어있다.
무크 『화요문학』 2018년 22호 발표
김백겸 시인 / 제주 국제 관함식(觀艦式)
제주 국제 관함식에 일본 군함이 일제 시대 욱일기(旭日旗)를 달고 오느니 마느니 방송이 시끄러워 관함식이 무언가 찾아봤지 관함식은 국가의 군 통수권자가 자국의 군함을 한 곳에 집결시켜 전투태세와 군기를 사열하는 해상 사열식 1588년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자 성대한 관함식을 열어 승전을 치하했다는 기록 빅토리아 여왕 때는 관함식이 17번이나 열릴 만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는 기록
일본은 대동아공영 제국의 영광과 향수를 다시 과시하고 싶은 거구나
아베가 총리 3연승으로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 개헌에 속도를 내면서 양적완화로 경제가 좋아진 국력으로 패권의 동력이 생기는 모양
트럼프가 미국 경제가 좋아지자 세계 1위 패권국가의 지위를 위해 도전국가 중국을 무역전쟁으로 쓰러뜨리는 현실처럼
미국의 세계 정책
나토 유럽은 독일을 지켜 러시아 진출을 막고 아시아 태평양은 일본을 지켜 중국 진출을 막는 정책 유럽을 지키는 지정학적 관문은 터키 동아시아를 지키는 지정학적 관문은 한국 군사 전문가들의 용어는 독일과 일본을 지키기 위한 secondary interest라고 하는구나
트루만이 6.25 때 한국을 도와준 것도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작은 전쟁으로 큰 전쟁을 막은 전략이었다지 한반도에서 밀리면 그 다음에는 전 세계로 진군하려는 소비에트와 스탈린의 야심을 읽었기에 중공군에 밀린 맥아더가 만주에 핵폭(核爆)을 요청하자 3차 세계대전이 두려워 맥아더를 해임한 현실 정치가의 전략
트럼프가 미국의 패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세계가 경제 전쟁 중 시황제 시진핑의 중국이 도전할지 항복할지 세기의 빅쇼가 벌어지는 중 국제 신사를 걷어찬 트럼프의 좌충우돌 때문에 한반도가 통일로 가는 길목에 있는지 김정은이 미국을 요리하려다가 독박 쓰는 엔드게임인지 세기의 빅쇼가 벌어지는 중.
안성에 사는 친구 손중기가 동창 카톡에 전선위에 앉은 제비 떼 사진을 올렸지. 제비들의 관함식 같다고 카톡 댓글이 올라오는 구나. 창공의 신사 제비들의 관함식은 저토록 평화로운데 제주도 관함식은 왜 이토록 시끄러운가.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민주국가가 된 21세기 지구에도 강대국들의 패권과 야심은 왜 이토록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가.
진화론은 정글 현실에서 우월지위를 향한 인간의 공격본성이라고 대답을 하지. 적자생존 자연도태로 우월한 인류와 우월한 백인과 우월한 자본가의 입지를 증명하는 이론. 진화론의 마지막은 지구에 인류만 남고 그다음 백인만 남고 그다음 자본가만 남고 마지막에 최고 강한 1인이 남아 태평양을 바라보는 공중 누각의 펜트하우스에서 컴퓨터와 로봇의 시중으로 혼자 식사하는 것이겠구나. 마지막 진화승리자인 AI 로봇이 인간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테양 에너지 식사를 할지도 모르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산업화 시대 기술혁명의 생산력으로 인류 행복과 증진을 위한 시도였는데 언제 지구 역사에 탐욕과 갈등의 이념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려는지. 인간은 언제 죽음의 지혜로 존재의 기쁨을 알아차려 돈과 소유욕에 멍든 왜곡 인생을 치유하려는지.
반년간 『작가마당』 2018년 하반기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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