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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다연 시인(익산) / 고(蠱)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7.

김다연 시인(익산) / 고(蠱)

 

 

 독충들을 그릇에 넣어 서로 잡아먹게 하면 최후 살아남은 독충은 가공할 독을 갖게 되는데 이를 고라 하고,

 투기하거나 저주하는 이가 있어

 오동나무 목각인형에 그의 이름과 사주를 적어 주술을 건 다음, 고를 그의 주변에 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는데 이를 무고(巫蠱)라 한다

 

 실록은 없지만,

 

 독충들을 그릇에 넣어 서로 잡아먹게 하면 최후 살아남은 독충의 독이 사라지는 족속도 있다

 독으로 해독하는 독,

 잃어버린 독 대신 독을 가진 것들을 잡아먹는 습성을 갖게 되는 이 고는

 독성을 품은 것의 몸속을 파고들어 서서히 독을 갉아먹는데, 독성을 다 잃으면 죽고야 마는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김다연 시인(익산) / 소리 없이 그리다

 

 

모른다, 얼마나 울어야 할지

어떻게 울어야 할지, 어렵기만 한 울음의 방식

 

액자 자국만 남은 사진을 보며 울고

망치 소리만 들리는 못 자국에 우는 울음

 

물감을 짜 마구 덧칠하는 허방 같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맺혔다 흘러내리는 물의 변주처럼

 

속울음 번지는 저물녘

 

맨발만 남은 신발들을 늘어놓고

먼지 낀 소파 밑 바둑알을 늘어놓고

즐기던 프로를 틀어도

 

닦이지 않는 얼룩 하나

 

까르르, 아랫집 웃음소리가

뜸 들이는 밥 냄새로 올라올 때

라면이라도 끓여야지,

 

거울 속에 들어앉아 웃는 연습을 해야지

 

 


 

김다연 시인(익산)

1961년 전북 익산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2년 시집 <사랑은 좀처럼 편치 않은 희귀 새다> 출간. 2005년 <시선> 특별발굴 당선. 2017년 《문학3》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바늘귀를 통과한 여자』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