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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수환 시인 / 각 외 2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7.

안수환 시인 / 각

 

 

소쩍새를 울리는 것은

슬픔인 줄 알지만 슬픔 아니다

각이었던 것

 

조팝나무를 흔들고 있는 것도

바람인 줄 알지만 바람 아니다

각이었던 것

 

15도쯤 삐들어진 각

 

그래서,

 

나는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힘껏 끌어당긴다

 

-시집 『그 사람』 2012

 

 


 

 

안수환 시인 / 구름 냄새

 

 

구름을 만드는 것은

햇빛과 바다와 풀잎과

그리고 거센 바람의 손짓일 거다

 

별을 만드는 것은

추락과 몰입

혹은 더욱 아득한 욕망의 파편일 거다

 

힘든 날

내 눈꺼풀을 열고 나온

구름 냄새

 

바람 부는 날

다시 내 눈꺼풀을 열고 날아가는 것

골이 띵한 것

 

꽃 없네

 

꽃 있네

 

 


 

 

안수환 시인 / 하강시편 1.2.3

 

 

1:::

나는 언덕 위에 집을 짓지 않겠다

남보다도 먼저 구름을 쳐다보고

먼 들판에 서 있는 물을 굽어보는 오만이

밤마다 내 몸을 핥고 다니며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 테니까

 

2:::

예배당 첨탑을 보더라도

갈밭 개개비의 집터를 보더라도

개구멍을 보더라도

본의 아닌 높은음자리의 능멸로써

심히 어지럽힌 땅

이 철면피! 혹은 노예근성

 

3:::

폭포여. 그대 내 집을 찾아오려거든

단숨에 마음을 쏟아 버린 후

저 자잔한 물가의 미풍 앞으로 오라

풀잠자리의 외출을 본뜨고 있는

또다른 절벽 앞으로 오라

 

<동학시인선 78>(동학사 출간)

 

 


 

안수환 시인

1942년 충남 세종시 출생.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후 고려대 대학원을 거쳐 명지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75년 《시문학》과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神들의 옷』 『징조』 『검불꽃 길을 붙들고』 『저 들꽃들이 되어 있는』 『달빛보다 먼저』 『충만한 시간』 『가야 할 곳』 시론집 『시와 실재』 『우리시 천천히 읽기』 외. 현재 『문학마당』에 주역으로 푸는 시학과 『시문학』에 신연작시집 『지상시편』을 연재 중임. 천안연암대학 교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