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유오 시인 / 흩어진 마음 햇볕이 뜨겁게 쏟아지고 발자국에 밟혀 죽은 풀이 바짝 말라간다 풀을 죽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거대하고 울퉁불퉁한 원이 되어 풀 위에 앉는다 도시락이 없는 아이들은 젓가락을 들고 돌아다닌다 젓가락이 도시락이라고 한 아이가 음식이 흐트러졌다고 울기 시작한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음식이 아이를 울린다 흐트러진 음식은 꼭 흩어진 마음 같고 돌려놓아도 돌려지지 않는 나무에 기대서 눈을 감으면 누군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집중하면 소리를 내고 떠나간다 아무도 나를 버린 적 없는데 버려진 것 같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서로의 몸을 감싸고 있는데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면 배가 부른 것 같다 버려진 도시락에서는 도시락을 싸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왜 자꾸 도시락을 싸주는 걸까 부탁한 적도 없는데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바람이 불자 모래가 도시락 위로 쏟아진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나는 눈을 감는다 다행이야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엄마의 마음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웅크려 앉아 있으면 내가 도시락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 몸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게 신기해 몸을 웅크려도 소리는 더 크게 빠져나가고 죽은 벌레들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
차유오 시인 / 단순하고 복잡한 형태의 세계
레고에게 힘을 준다
서로 붙잡고 있어야 무너지지 않는
그건 단단한 형태의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사람은 손을 잡아도 하나의 손이 될 수 없는데
함께한 적 없는 것처럼
잘못 끼운 레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건지
처음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말한다
레고를 무너트리면 쌓아 올린 마음까지 무너져 버리고
떨어진 레고를 하나씩 집는 아이
어떻게 해보겠다는 듯이
무너트리고 쌓는 일을 반복하면서
무너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2020 문장웹진 7월호》
차유오 시인 / 모르는 일들
비가 올 것 같아 몸이 쑤신 사람은 날씨에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는 평생 모를 감각을 한순간에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집에서 나오면 예언했던 것처럼 비가 내리고 빗소리에 무뎌지는 귀가 있고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온다 아무도 없는 유모차를 끄는 사람이 지나간다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라도 담아주고 싶어진다 오래도록 우산꽂이에 꽂혀 있던 우산 잃어버린 것은 버린 것과도 다르지 않아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또 다른 우산을 찾아 그 곳에 숨어버리는 것 투명한 우산이 불투명해질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자신을 포기한 우산은 멀리 날아가고 나는 우산을 보며 괜히 힘을 빼려고 한다 날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누군가 있다고 생각해왔던 곳을 상상하면서 언제부턴가 죽은 사람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으로 힘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주 작을 텐데 누가 누군지 모를 만큼 아주 작을 텐데 모든 게 거기서 거기라도 나는 거기에 있고 싶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함께
-현대시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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