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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2079

[말씀묵상] 너 어디에서 깨어 있느냐? [말씀묵상] 너 어디에서 깨어 있느냐? 대림 제1주일 제1독서 (이사 63,16ㄹ-17.19ㄷㄹ;64,2ㄴ-7) 제2독서 (1코린 1,3-9) 복음 (마르 13,33-37) 가톨릭신문 2020-11-29 [제3221호, 15면] 하느님 섭리에 따르면서 말씀 경청하고 실천하는 자세야말로 깨어 있기를 명령하신 주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 표현하는 것 경외심 잊은 채 잠드는 것은 은총과 은사 저버리는 행위 대림을 맞으며 인내와 노력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야 “주 만군의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 80,20) 새벽에 깨어나니 때 아닌 폭우가 쏟아지고 회오리바람 소리마저 들립니다. 무서워라!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면서 기후에 민감해졌습니다. 올해 이상기.. 2020. 11. 29.
[신약 성경 다시 읽기] 나 죽을 때… - 티모테오 2서 [신약 성경 다시 읽기] 나 죽을 때… - 티모테오 2서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공자의 말을 담아놓은 『논어』에서 누군가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그리스도교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라 고백합니다.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와 같아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신약 성경, 특히 바오로의 서간을 읽을 때마다 꽤나 당황스러운 것은 죽음과 생명, 선과 악, 고통과 기쁨 같은 대립과 반목이 뚜렷한 단어들이 그 긴장의 힘을 모조리 잃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도무지 하나될 수 없는 단어들이 버젓이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묻고 따지고 갈라놓은 채 서.. 2020. 11. 26.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뱀의 유혹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뱀의 유혹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지금 우리는 에덴동산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이 동산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들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창세 2,9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생명나무는 고대 근동의 유물들에 자주 등장하는 문양이며,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생명나무 열매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 나무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다양한 수호 동물들이나 신들이 이 나무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동산에서는 인간이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이나 그 열매를 먹는 것이 금지되지 않았습니다. 곧 이 동산에 사.. 2020. 11. 25.
[신약성경] 사도행전 읽기 (15) [신약성경] 사도행전 읽기 (15) 염철호 요한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2차 전도여행 출발 예루살렘 사도회의 이후 바오로는 두 번째 선교여행(15,36-18,22)을 떠납니다. 그런데 출발부터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마르코라는 요한의 동반 문제로 심한 언쟁이 벌어집니다. 앞선 여행 때 마르코가 전교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사도 13,13) 바오로가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갈라져 각각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다툼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덕에 더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여행의 동역자가 됩니다. 바오로는 실라스를 동행하여 앞선 여행 때 전교한 바 있는 시리아, 킬리키아 지방의 여러 교회와 데르베와 리스트라를 찾아가는데, 거기.. 2020. 11. 24.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모시자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11.22 발행 [1589호] 한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아직은 코로나 19로 인한 힘든 상황이 종결될 기미가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 주일을 기점으로 우리는 주님의 섭리 안에서 새로운 희망과 기다림의 시간인 ‘대림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제정됐다. 세상에 만연하는 무신론과 세속주의 속에서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개인과 가정 그리고 온 우주에까지 두루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는 희망과 기쁨의 축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손길이 더 이상 미치지.. 2020. 11. 23.
[말씀묵상] 가장 작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 [말씀묵상] 가장 작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제1독서 (에제 34,11-12.15-17) 제2독서 (1코린 15,20-26.28) 복음 (마태 25, 31-46) 가톨릭신문 2020-11-22 [제3220호, 15면] 풀밭과 샘물 찾는 순한 양들은 침묵하고 고통 참는 사랑의 표지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 돌보시는 그리스도는 참된 목자이시며 하느님 나라 들어가는 유일한 문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왕(마태 28,18)이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착한 목자’(요한 10,11)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양 떼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순례길에 함께하는 가장 작은 .. 2020. 11. 22.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남은 것에 감사하라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11.15 발행 [1588호] 마태오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이 두 차례에 걸쳐 나오는데, 우선 13장에 기록된 일곱 가지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에는 지상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고, 후반부21장과 22장 그리고 오늘 복음 25장은 하느님 나라를 통해 곧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심판에 대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대부분 다가올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 나라를 성실하게 준비한 사람들보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무시하고 오직 옛사람의 모습.. 2020. 11. 16.
[말씀묵상] '좋은 기다림, 나쁜 기다림' [말씀묵상] ‘좋은 기다림, 나쁜 기다림’ 연중 제33주일 제1독서 (잠언 31,10-13.19-20.30-31) 제2독서 (1테살 5,1-6) 복음 (마태 25,14-30) 가톨릭신문 2020-11-15 [제3219호, 15면] 감사하는 마음과 성실함이 없으면 근거없는 공포로만 이어져 하느님 당도하실 시간 기다리며 훌륭하고 지혜롭게 살면 진정한 자유와 존엄 누리면서 기다림의 결실 보상받아 주어진 삶 받아들이고 주님께 대한 경외심을 항상 간직해야 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이렇게 모두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마음을 모으는 거구나…. 코로나19의 종식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라져가는 시간의 뒷모습만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2020. 11. 15.
[탈출기 함께 읽기] “재계약”과 “함께살이” [탈출기 함께 읽기] “재계약”과 “함께살이” (탈출 32,1-40,38) 조성풍 신부(사목국장) 탈출기 32장 1절에서 34장 35절은 말씀은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충실성, 인간 죄악의 어두움과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의 빛,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는 모세의 사명 등에 대해 전해줍니다. 이 대목은 탈출기 19-24장의 시나이 계약과 연결됩니다. 시나이 산 위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현존의 자리인 성막에 관해 자세하게 지시하시는데(탈출기 25-31장),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현존을 표상한다고 금송아지 상을 세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을 깨트리는 배반으로 자신들의 생명과 미래에 위기를 맞이하지만, 모세의 중재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계약을 맺으십니다(탈.. 2020. 11. 14.
[구역반장 월례연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구역반장 월례연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나충열 신부(빈민사목위원회) 광야의 의미 광야는 사막과 비슷하지만 다른, 매우 척박한 땅입니다. 광야는 축복과 생명의 땅이 아닌 죽음과 저주의 땅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무려 4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광야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체험을 통해 그곳은 더 이상 시련의 땅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성숙시키고,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은총의 땅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온갖 불평과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으로 단련시키십니다.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신 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핍박받고 힘없는 .. 2020. 11. 13.
[하느님 뭐라꼬예?] 야곱과 하느님의 축복 [하느님 뭐라꼬예?] 야곱과 하느님의 축복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에사우와 야곱의 탄생, 에돔과 이스라엘의 유래 창세기 25장 중반부에 다음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사악이 나이 마흔에 라반의 누이인 레베카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기 때문에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21절) 이사악의 나이 예순 살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어 임신을 하게 된 레베카는 아기들이 배 속에서 서로 부딪쳐 대자 주님께 문의를 했고, 이에 주님께서는 “너의 배 속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 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26,23)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야곱은 쌍둥이 형인 에.. 2020. 11. 12.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키프로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키프로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첫 선교 여행지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 살라미스의 바르나바 기념 성당 나자렛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안티오키아 교회에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뜻깊은 일이 생깁니다. 그 교회의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바르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견한 것입니다(사도 13,3).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 선교를 위해 파견한 교회는 안티오키아 교회가 처음이고, 바르나바와 사울(바오로)은 선교사로 파견된 첫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이 선교 여행을 떠나면서 첫 번째 선교지로 택한 곳이 바로 키프로스였습니다.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키프로스는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남쪽 해안에.. 2020.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