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15158 정숙자 시인 / 북극형 인간 외 1 정숙자 시인 / 북극형 인간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 2019. 3. 24. 서영처 시인 / 함순이 온다 서영처 시인 / 함순이 온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함선을 보며 함순을 생각한다 그와 나 사이, 함순과 새순 사이 아무런 함수관계가 없지만 눈보라를 헤치고 그가 쇄빙선을 몰고 온다 굶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움푹 패인 볼, 함구하는 입 얼어붙은 갑판 위에 자작나무 빗자루처럼* 선 다리.. 2019. 3. 23. 김추인 시인 / 내게서 말똥내가 난다 김추인 시인 / 내게서 말똥내가 난다 차마고도, 설산 넘는 길 합파(哈巴) 당나귀들의 미션은 무게를 견디는 일이다 하얗게 아이라인 그린 눈으로 실실 웃는 눈매는 동키의 생존 바윗길에 발굽을 다치며 긁히며 안장 위의 무게에 속이 끓는지 철부덕- 내 동공에 말똥 한 덩이 싸대기 친다 .. 2019. 3. 23. 김금희 시인 / 고양이를 꺼내줘 김금희 시인 / 고양이를 꺼내줘 앙칼지지 못하면서 그는 모국어를 버리고 있었다 젊다는 것은 모르는 게 많다는 것 체면은 모르는 것의 방어기제였다 자존심이 두껍다는 것은 경계가 심하다는 것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늘 뻐근했다. 쓸데없는 규칙을 만들어 절대란 단서를 붙여 놓.. 2019. 3. 23. 송과니 시인 / 밤은 만화다 송과니 시인 / 밤은 만화다 있다, 새까만 하늘 뒤에 숨어 식어가는 별 만지작거리는 한 미숙한 낱말. 늑골 깊숙한 그의 흐느적임 민감해진 밤바람에게 질질 끌린다. 발바닥은 앞뒤를 잃었다. 외눈박이 달이 길 위의 거의 탈진한 신발 쏘아댄다. 그 시간 닳고 닳았는데 0시란 망각은 몇 정거.. 2019. 3. 22. 박남희 시인 / 처마 끝 박남희 시인 / 처마 끝 사랑의 말은 지상에 있고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지상이 뜨겁게 밀어올린 말이 구름이 될 때 구름은 식어져서 비를 내린다 그대여 이별을 생각할 때 처마 끝을 보라 마른 처마 끝으로 물이 고이고 이내 글썽해질 때 물이 아득하게 지나온 공중을 보라 이별의 말은.. 2019. 3. 22. 신형주 시인 / 맑은 탁류 신형주 시인 / 맑은 탁류 미꾸라지가 많은 물은 맑다 들끓는 고요 개울을 들여다보던 그때 미꾸라지 서너 마리 진흙 속에서 요동친다 흙탕물을 일으키자 뿌옇게 변하는 개울 진흙 바닥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꾸라지들 그들이 물의 자정력 미꾸라지가 많은 물은 건강하다 시집 『젬피』(.. 2019. 3. 22. 권성훈 시인 / 11월의 오브제 제목 없음 권성훈 시인 / 11월의 오브제 주저 없이 흘러내리는 노을이 바닥에 닿는다 바닥을 가기 위해 바다는 붉게 닳아 있다 죽은 새는 이제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겨울이 거울을 벗어난 날개로 식어가고 눈 밖으로 사라지며 바닥을 닿는 첫눈의 기억 속으로 녹아들고 오래 밟혀온 눈 .. 2019. 3. 21. 권정일 시인 / 테라스 권정일 시인 / 테라스 구름의 폭설,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테라스가 설원으로 보일 때가 있다. 양떼구름을 밀고 가는 한 무리 양떼구름 그리고 모든 구름을 나는 모르지만 대체로 구름을 안다고 할 때 구름의 모서리에서 크고 작은 은빛물고기가 쏟아졌다 순식간 양탄자, 언덕, 지붕으로 .. 2019. 3. 21. 김왕노 시인 / 초록나무 아래서 쓰는 머리말 김왕노 시인 / 초록나무 아래서 쓰는 머리말 하늘이 새파래. 그래도 총체적 난국인 시절, 경제와 동반 추락하는 사랑이니 그리움 이별이니 만남마저 푸른 부레를 가진다면 초록나무 이파리처럼 만어사 일만 마리 물고기처럼 떠올라 끝없이 파닥이다가 깨달음으로 붉게 물들어 갈 것 초록.. 2019. 3. 20. 정호 시인 / 무한상상력의 동질적 또는 이질적 인식의 시적 형상화 정호 시인 / 무한상상력의 동질적 또는 이질적 인식의 시적 형상화 정호(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 강영은 「동물성」 ( 『포지션』 2018 가을호) - 김나영 「4월1일」 ( 『웹진 시인광장』 2018 5월호) 시는 언어를 도구로 하는 예술이다. 언어를 재료로 함으로써 시는 작자나 독자에게.. 2019. 3. 19. 최서인 시인 / 울음의 기원 최서인 시인 / 울음의 기원 복받쳐 오르는 울음의 심연을 모아 짐승의 뼈 안에 가둔 것이 최초의 피리였으리라 인간이 처음 슬픔을 은유한 도구, 우루밤바 계곡에서 발굴된 미라의 목에 걸린 산포니아* 피리소리는 안데스 능선을 따라 바람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우리의 앞머리칼이 옅은 .. 2019. 3. 19. 이전 1 ··· 1251 1252 1253 1254 1255 1256 1257 ··· 12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