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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8

송종규 시인 / 저녁의 우체국 앞 송종규 시인 / 저녁의 우체국 앞 그때 문득, 공중 높이 휘장처럼 노을이 펼쳐졌을 때 내가 앞섰던 거 같기도 하고 네가 앞섰던 거 같기도 하다 아니, 네가 저만치 앞서 가고 나는 멀찍이서 네 등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저녁의 우체국 앞에서 느린 구름의 행렬들이 공중을 배회.. 2019. 3. 31.
배세복 시인 / 드라이플라워 배세복 시인 / 드라이플라워 밤잠 잃은 나는 그 밤도 꽃밭을 헤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더듬이는 끄떡없다. 지팡이처럼 두드리다 발견한 것은 꽃밭 속 숨죽이고 있는 한 묶음 꽃다발, 누군가 여러 해 동안 날 엿보았던 것이 틀림없다. 조심스레 꽃다발을 한 잎씩 넘긴다. 그때마다 갖.. 2019. 3. 30.
김밝은 시인 / 폭풍의 언덕 김밝은 시인 / 폭풍의 언덕 ㅡ캐서린의 말 구부러진 노래라도 부르게 차랑차랑, 자작나무 잎사귀들 허공에 쌓아놓고 ⋯ 이제 당신을 떠날 몸짓을 내보여야 할 비장한 날이다. 꼬깃꼬깃 구겨져버린 종이처럼 펴지지 않은 마음을 희미하게 조차 읽어내지 못해 새까만 신음으로 주저앉는 목.. 2019. 3. 30.
이숙희 시인 / 가시 이숙희 시인 / 가시 산골 호박밭 잎은 말라가도 가시는 지치지 않고 호박 따는 농부를 바라본다 여름 무더위 서너 번의 기절 그 사이 눈치껏 열매는 살이 오르고 가시 등줄기는 독침으로 벌레를 잡는다 해도 기운이 빠지고 울타리 감나무도 노을처럼 호박도 노을처럼 화살나무도 노을처.. 2019. 3. 30.
박세현 시인 / 극지 박세현 시인 / 극지 극지의 갓길을 산책하고 철학자가 쓰다 던져둔 시 한 줄 고치고 있다 음악이 없는 영화가 있고 자막이 없는 현실이 있어서 좋다 영화관 구내 카페에 꽂혀 있는 시집들처럼 한번도 읽힌 적 없는 시를 입은 사람들이 그저그런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영화 속에서 영화를 .. 2019. 3. 30.
정지우(鄭誌友) 시인 / 레밍들 정지우(鄭誌友) 시인 / 레밍들 우리는 긴 밤을 행진하고 있다 무리란 얼마만큼의 길이인가 앞, 뒤란 어떤 길이의 중간을 보유한 길이인가 어떤 길이의 요구사항들이 최대치로 몸을 늘리는 일인가 앞서가는 마음이 휴식을 지나친다. 산맥엔 함께라는 말과 흩어진다는 말이 잠복해 있다 끌.. 2019. 3. 30.
홍철기 시인 / 모텔 시크릿 홍철기 시인 / 모텔 시크릿 이곳은 밤이다. 마음이 저물어 밤인 곳 듣지 못한 다짐을 놓고 떠나는 사랑이 있다. 내가 들고 있는 표가 편도란 걸 알지 못한 시절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을 밟고 걸었다. 걷다 멈춘 발길이 구석에 흘린 글자에 걸려 넘어진다. 돌아가고 싶다. 바닥에 적힌 이야.. 2019. 3. 29.
양윤덕 시인 / 안목의 사색 양윤덕 시인 / 안목의 사색 안목, 이라고 소리 내 읽는 순간 줄자, 라는 말로 바뀌어 들려온다. 도처에 대상들은 눈여겨보는 넓이다. 안목은 자벌레처럼 눈금의 범위를 기어간다. 가다가 멈출 때마다 요소요소가 된다. 추정으로 정해놓은 지레잠작미터의 눈금은 비교적 정확하다. 안목의 .. 2019. 3. 29.
김혜천 시인 / 폐허에서 오는 봄 김혜천 시인 / 폐허에서 오는 봄 위태로운 발상은 젊음의 다이빙 그림자를 보는 건 내공을 보는 일이다 지상의 발 부친 것들은 중력을 이겨낼 수 없어 어깨가 안으로 굽듯 낡아가는 것에는 지친 영혼이 깃들어 잇다 이쪽과 저쪽을 버티는 벽을 허무는 일은 살아 있을 때의 일이다 고염나.. 2019. 3. 29.
김백겸 시인 / 카발라(kaballah)의 생명나무 환상 김백겸 시인 / 카발라(kaballah)의 생명나무 환상 무한인 아인소프Ein-sof로부터 세상의 왕관 케테르Kether로 빛이 흘러넘치고 케테르가 충만해지자 지혜 호흐마Chokmah로 빛이 흘러넘치고 호흐마가 충만해지자 이해 비나Binah로 빛이 흘러넘치고 비나가 충만해지자 자비 헤세드Chesed로 빛이 흘러.. 2019. 3. 29.
이혜미 시인 / 웨이터 이혜미 시인 / 웨이터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라는 말끝의 물기를 붙들고.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물러서 있는 것입니다. 불 꺼진 상점들이 늘어선 도로에서 앞서간 사람이 문득 보이지 않는다면, 멀어지는 뒷모습을 쫓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주 천천히 투명해져 보십시오. 온몸에 .. 2019. 3. 29.
서연우 시인 / 지구를 세로로 돌아오는 계절 서연우 시인 / 지구를 세로로 돌아오는 계절 밟으면 가고 밟으면 서는 오토매틱 자동차일 줄 알았다. 나는, 가을 신상 단풍패션쇼가 열리던 곰배령에서 바람은 신나무, 설탕단풍, 시닥나무에 최고의 메이크업을 선사했고 더 멋진 무대 위해 빛은 신나게 찬란하고 청명했다. 대류는 순환하.. 2019.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