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15158 박정옥 시인 / 오후 5시 사람 오후 5시 사람 박정옥 시인 아프리카 '해뜨는 나라' 시계는 매일 해 뜨는 시간이 1시, 해가 지는 24시가 되면 하루가 끝난다. 하루치의 시간으로 일생이 배열되고 18분으로 삼백육십다섯 날을 산다는 나라 '해 뜨는 나라' 시계를 빌려 온 나는 오후 다섯 시 사람 그때 나는 마악 피어난 여름.. 2019. 3. 3. 김효선 시인 /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외 1편 김효선 시인 /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우체국에 갑니다 쓸쓸해서 새도 없이 새장을 키우면서 말이죠. 오늘의 날씨에 소인을 찍는다면 아침에 본 깃털을 저녁에도 볼 수 있나요. 어제 사랑한 얼굴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새장을 키우면 새는 한 번쯤 고백을 할까요. 우리가 다시 사랑한.. 2019. 3. 2. 김희숙 시인 / 불규칙한 식사 불규칙한 식사 김희숙 시인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들 허겁지겁 돈다 폭풍 흡입으로 돌아가는 입 잘게 부숴먹는 바람 밥 계절풍 흙과 물의 비열로 교란(攪亂)이다 이쪽으로도 씹고 저쪽으로도 씹는 이빨만 있는 기형을 입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는 밥 휘청거리며 서서.. 2019. 3. 2. 변영희 시인 / 대범하게 위선적으로 대범하게 위선적으로 변영희 시인 하얀 볼을 놓으면 골프채가 원을 그리듯 지나가지 눈도 깜박 안하고 공을 그러쥐며 날아가는 공 따위 바라보지도 않고 가끔 나누는 인사처럼 나이스 샷 올까말까 망설이는 비 올라갈까말까 망설이는 눈 토끼는 사라지고 달에 고양이가 산다는 미정이 .. 2019. 3. 2. 강순 시인 / 귀를 씻었다 강순 시인 / 귀를 씻었다 귀를 주웠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운동화 같은 귀를 주웠다. 누군가가 쓰다 버린 지우개 같은 귀를 모았다. 귀들이 섞여 내 귀가 없어졌다. 귀를 만졌다. 기억은 활짝 꽃피지 못한 암갈색 귀 속에서 슬픈 짐승 소리가 났다. 귀 속의 귀 귀 밖의 귀 다 버리고, 어느 새.. 2019. 3. 1. 한성희 시인 / 몽상가의 발굴 몽상가의 발굴 한성희 시인 지층은 몽유와 사색에 닿아있다 새의 그림자가 굳은 세상 잎사귀를 닮은 날개는 시간과 싸움이다 나는 눈꺼풀을 반쯤 닿은 상태에서 층위의 세계를 들쳐본다 삽날같이 한줄기 빛이 부리 끝에 닿는다 시간의 날개를 흉내 낸 빛으로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표정.. 2019. 3. 1. 한보경 시인 / 간절의 틈새에 손가락이 끼다 간절의 틈새에 손가락이 끼다 한보경 시인 이미 와 있는 이미의 이마를 보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아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간절과 간절의 벌어진 틈새에 손가락이 끼었다 열손가락을 기어이 뭉개고 마는 일 아직 피지 않았거나 이미 지고만 꽃들처럼 세상의 모든 약속들이 핏빛임.. 2019. 3. 1. 황주은 시인 / 무화과의 순간 황주은 시인 / 무화과의 순간 생일에 가을비가 내렸다. 당신이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당신은 나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11월의 약속은 빗방울처럼 튀었다. 당신은 펼쳐진 우산을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빗방울은 먼 곳으로 둥글게 떨어졌다.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 당신이 둥글어.. 2019. 2. 28. 조민 시인 / 그 밖의 모든 것 그 밖의 모든 것 조민 시인 속을 다 드러내면 폐에 뿌려진 흰 점이 눈보라처럼 빛났다 눈을 감으면 노란 불티가 날아다녔다 멀고 먼 옛날에 아주 가까워졌다 머릿속은 반은 희고 반은 빛났다 검은 싹 같은 것이 간과 폐와 혀끝에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새 무덤 같았다 그 밖의 모든 것은.. 2019. 2. 28. 안명옥 시인 / 고비 고비 안명옥 시인 한고비가 남았다고 했다 그 한고비 잘 넘기고 나면 괜찮다 했다 그리고 겨울이 방문했다 온통 얼음인데 녹이는 방법을 모르고 고비가 오면 고비를 모른 척하나 고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조율 안 된 기타 6줄을 연주하다가 생활이 박자를 놓쳐버린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거라고 텅 빈 하루를 위로하는 저녁 고비사막을 건너갈 때 힘겨운 시간 곁에 있어준 건 바람과 허공이었다 한 곡 제대로 완주하기 위해 다시 집어든 기타 자꾸 왼손가락이 아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안명옥 시인 2002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서사시 『소서노』와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칼』과, 창작동화로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금방울전』 등이 있음... 2019. 2. 28. 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아웅산 묘소 옆 17명 명단 앞에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감았다.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리고 수류탄 파편들이 순간 멍게 여드름으로 벌겋게 박혀있다. 마하무니불탑 개금 붙이듯 싯누런 시간들은 이국땅에서 겹겹이 수십 년, 개금(改金)과 사이를 해독.. 2019. 2. 27. 나고음 시인 / 상강 이후 상강 이후 나고음 시인 서리 맞아 달고 부드러운 대봉감이 당도한 날 온 집에 불을 켠 것 같았다 한 알 한 알 햇볕에 잘 익기를 기다리며 거실 장 위에 두 줄로 세워 놓고 4박5일, 그 많은 불들을 끄지도 않고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빈 집에 감들의 온기가 가득하다 심줄 박힌 단단하던 속내.. 2019. 2. 27. 이전 1 ··· 1256 1257 1258 1259 1260 1261 1262 ··· 12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