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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좋은글모음(3)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by 파스칼바이런 2010. 10. 16.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정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런 다음 그것을 가져와 겉을 오래된 것처럼 위장한 다음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나서 크고 튼실한 자물쇠 하나를 채웠다.

 

그 이후부터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어느 때부턴가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노인은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조사해 보려 하였지만 단단히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웬만한 힘으로는 밀어도 꼼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매우 무거운 것이 들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달그락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그 소리를 듣고 생각하였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 거야!'

 

이렇게 생각한 아들들은 그때부터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얼마 뒤에 노인은 마침내 죽었고, 아들들은 기대에 차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깨진 유리 조각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두 아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큰아들은 버럭 화를 내었다.

"내가 당했군!"

 

큰아들은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왜? 궤짝이 탐나니? 그럼 네가 가지 거라."라고 말한 다음 휑하니 나가버렸다.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묵중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1분, 2분, 3분······.

마침내 막내아들의 눈에는 맑은 참회의 이슬이 맺혔고, 그것은 줄기를 이루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막내아들은 궤짝과 함께 유리 조각을 집으로 옮겨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런 옛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기신 유품 하나만이라도 잘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가 되리라 여긴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다.

그래서 막내아들은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하고, 유리 조각을 쓰레기봉투에 담기 시작하였다.

유리 조각을 다 담고 보니, 그 궤짝 맨 밑바닥에 짧은 시구(時句)가 적힌 종이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막내아들의 목울대에서 꺼억 꺼억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는 큰소리로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그의 나이 어린 아들딸도 달려왔다.

막내아들이 읽은 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막내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삼십여 년,

    수천 번, 아니 아마도 수만 번

    그들은 가슴조이며 나를 울게 하였고,

    가슴 벅차도록 나를 웃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들은 달라졌다.

    지금 그들은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 혼자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행복한 고통이었던 기억.

    그러나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 조각으로 남은 기억.

     

    그러나 아아,

    내 아들들만은 부디 그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제발 나 같지 않기를!

 

막내아들의 아내와 아들, 딸들도 그 글을 읽었다.

"아빠!" 하고 소리치며 막내아들의 아들딸들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 또한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이런 이치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첫째 아들은 자기를 돌아볼 줄 몰랐지만 막내아들은 자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신 글을 읽고 나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뉘우쳤다.

그 뒤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는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인성'이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증명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