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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시인 / 한줌의 일상 외 1편 이병국 시인 / 한줌의 일상 ​ 빛이 안쪽으로부터 에돌아 번집니다. 지긋한 시간을 견딘 철제 의자에 걸터앉아 너머를 바라보는 노인의 어깨 위로 그늘이 집니다. 생의 골짜기를 헤집는 빛은 찰나의 영원으로 머물고 미간에 뭉친 .. 2026. 2. 5.
전은겸 시인 / 코 외 1편 전은겸 시인 / 코 ​ ​ 학창 시절 대바늘뜨기 실습 시간 가정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코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한 땀 한 땀 떠 나갔지 처음이라 긴장한 탓일까 힘이 들어가 너무 잡아당긴 탓일까 털실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 2026. 2. 5.
이순 시인 / 그날 외 1편 이순 시인 / 그날 어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어 출근하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무심코 오늘의 날짜를 쓰다 그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 그날이구나! 그날의 내가 떠올랐어 그날따라 출근이 늦었지 준비하다 말고 TV를 보면서 어째어째 발 동동 구르다가 울다가 이리저리 채널 돌리다가 하루 종일 허둥대었지 밤이 늦도록 아무도 잠들지 못하고 위선과 탐욕이 뒤섞인 모순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봐야만 했었지 현실은 .. 2026. 2. 5.
최예지 시인 / 어죽(魚粥) 외 1편 최예지 시인 / 어죽(魚粥) ​ ​ 가마솥 안에서 뼈와 살이 끓는다 생사를 넘어선 아우성에 무쇠도 침묵을 깨고 거품을 토해낸다 ​ 물살을 거슬러 들썩이던 아가미가 마지막으로 내뿜는 강의 입김 가루가 된다 해도 끝내 .. 2026. 2. 5.
우혁 시인 / 무게 외 1편 우혁 시인 / 무게 아침이 얇게 배어드는 창문 오늘도 저 많은 광자들이 여기로 쏟아지는구나 꿈 속 걷던 발에 벌레 한 마리 밟을 뻔 했다 아무 생각 없는 무게가 죄 지을 뻔 했다 어떻게 그렇게 가볍니, 무게가 온통 걸음에만 쏠려 있어 걸음이란 업이 내 지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벌레가 난다 어쩜 그리 가벼울까 업을 지 운 날갯짓은 저런 건가 눈치 없이 꼭대기만 보고 오르던 나의 등반 어디서 푹 꺼진다 가끔 걸음은 고.. 2026. 2. 5.
조필 시인 / 스카프 생존기 외 1편 조필 시인 / 스카프 생존기 묶여있는 너를 본다 바람이 존재하는 이유를 되새김질하며 소리를 부여잡고 흔들리는 네 앞에서 목이 잠기는 행간을 읽으며 나는 매듭의 매무새를 다듬는다 어디쯤 온 것일까 .. 2026. 2. 5.
김미지 시인 / 안녕 외 1편 김미지 시인 / 안녕 ​ ​ 안녕, 안녕은 무사한가요 이미 문고리에 걸려 있거나 신발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말 입술을 열지 않아도 한 번쯤 다녀간 표정처럼 우리의 바깥에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 2026. 2. 5.
김혜주 시인 / B 플렛 외 1편 김혜주 시인 / B 플렛 모차르트를 누리는 좋은 방법은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죄수들에게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를 틀어주는 장면이 있다 봄 편 같은 피아노 소리로, 수감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하는 순간은 잃어버린 표정까지 돌아오게 한다 나를 부르며 나를 벗어나는 이름은 .. 2026. 2. 5.
김형로 시인 / 유목민의 눈 외 1편 김형로 시인 / 유목민의 눈 평원의 사람들은 멀리 본다거침없이 먼 지평선이 지척이다 구름의 속도비상하는 매의 숨겨진 발톱초원에 갓 핀 꽃잎 속 이슬 한 방울이그들 눈 속에 있지만 그것은 시력이 아니다 발 닿는 곳 모두 길이자머무는 곳 모두 집으로 가진무심 무욕선한 영혼의 힘 아무것에도 길들여지지 않는바람을 낳아 방목하는천진한 힘으로천 리 밖 비를 헤아리고만 리 밖 별을 읽는 아득히 푸른 저 유목민의 눈 -시집 ·문예중앙·2016 김형로 시인 / 흔들리며 고맙다고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몸몸의 주름이 펴지지 않는다굽은 곳은 더 틀어지고패인 곳은 더 깊어졌다아픈 몸을 자주 미워했지만몸은 나를 사랑하기만 했다 비극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티격태격 도니말 없던 몸이 말을 한다귀에서 여치 소리 나.. 2026. 2. 5.
고석종 시인 / 숨은 꽃 외 1편 고석종 시인 / 숨은 꽃 낡은 벽시계가 잰걸음을 치고 있는 좁은 방 밤마다 부유하는 나방처럼 네온 빛을 받아먹고 거울 속에서 피어난 그녀 제 삶을 빗질하듯 열심히 화장을 한다 굴절된 진통을 매단 지친 어깨 담뱃불로 댄 자국은 문신같이 선명하다 바랜 .. 2026. 2. 4.
주영헌 시인 / 좋은 시는 없다 외 1편 주영헌 시인 / 좋은 시는 없다 좋은 시는 없다 우리를 너와 나라는 이분법으로 나뉘는 세상 시까지 좋은 시와 나쁜 시로 구분하여야 하겠는가? 그래도 좋은 시가 무엇인가 다시금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해 줄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 2026. 2. 4.
지하선 시인 / 해운대에서 외 1편 지하선 시인 / 해운대에서 어둠이 하늘과 바다를 다 지웠다 검은 캔버스 한 장만 남았다 검푸른 붓을 거머쥔 파도 백색의 그림을 그린다 등대불빛 한 점씩 끌어올려 먹물 닦아주고 뱃고동 소리 한쪽 모서리에 세워진다 흔들리는 .. 2026.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