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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시인 / 불새 외 1편 권혁재 시인 / 불새 퇴근길 발걸음을더디게 하는 골바람불냄새를 따라가다아버지 냄새를 따라가다가,리어카로 된 낡은 둥지에깃털을 음츠리고 앉아 있는오래된 불새를 보았다구들장이 식어지는 새벽답불목으로 불길을 밀어 넣던아버지의 화덕한 얼굴이녹슨 의자에 앉아 있었다불에 달궈진 노란 진액이가슴 밑바닥을 후려쳐 솟아오르는 눈물인 듯훌쩍이며 드럼통을 타고 내렸다절정의 냄새를 보듬으며둥지주변을 서성거리는 불새의 곱은 몸짓울 때가 되면 울고, 날 때가 되면 날아가리니맛있는 불길이 아지랑이로부리에서 흩어져 피어날 때아버지는 불새알 같은 군고구마를 꺼내셨다꺼지지 않은 불씨가 담긴아버지의 아궁이 위로 내리는 싸락눈불새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권혁재 시인 / 시집을 바람맞히다 시월에 어느 시인이 보내준 시집을아내가 받아 거풍.. 2022. 12. 8.
최규환 시인 / 그림자 외 4편 최규환 시인 / 그림자 그리운 자가 그림자로 생각될 때꿈속에서도 그림자를 따라다닌 적 있다그늘과 그림자를 깨달았을 때 빛이 보인다는 걸운명처럼 뒤늦게 알게 해 준그림자와 그리운 자 사이내 한쪽은 그리운 자였고너의 한쪽이 그림자가 되어 서로 마주 보았던 계절 그림자가 좋아빛이 달아준 그림자를빛보다 융숭한 맑음이라 여기며내 그리움과 너의 그림자 사이에 부는 호젓한 바람을 맞으며우리가 다시 나팔을 분다고 할 때꿈에서도 그림자만 따라다니는 일몰 근처에 내 한쪽을 다른 한쪽에 안겨주지 못하더라도그리운 자, 그림자 사이로 보이는 비혹한 배경 그림자가 좋아 -시집 『동백사설』(상상인, 2022) 수록 최규환 시인 /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행간 2 겨울 외투로 가려진 연약한 우리가빛으로 보였던 건 습한 그늘로부터 왔기.. 2022. 12. 8.
정경훈 시인 / TOTO 외 2편 정경훈 시인 / TOTO 긴 표류를 끝내면 당신의 섬으로 마리화나를 던지겠습니다 재회하기에는 깊고 먼 해수공백에서 가장 빛나는 자갈을 반으로 갈라 열거합니다 불가해성의 당신불가사리 당신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불가사리가 되어불 불 불 불몸 몸 몸 몸기름을 부어불사른 당신 긴 방황을 끝내면 당신의 섬으로 마리화나를 던질 예정입니다 당신의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불법을 도모하여마비란 것을 설명합니다 (자기야, 치료용 대마는 합법이니까 훔칠까 생각 중이야 망 좀 봐줄래? 도와줄래?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 당신은 죽기 위해 울었고산다는 것은 시시하지 않은 일이며팔뚝에는 붉은 개미들이 가득했습니다 갈매기는 새우깡을 먹기 위해 손가락을 빨고당신의 할 일은 때밀이를 끼고 빡빡살 타는 냄새가.. 2022. 12. 8.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제65화) 시복시성 추진의 의미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제65화) 시복시성 추진의 의미 가톨릭신문 2022-12-11 [제3322호, 12면] 2022. 12. 8.
이영식 시인 / 바다에서 시인에게 외 1편 이영식 시인 / 바다에서 시인에게 파도가 바위를 친다함묵의 북, 두드려 억만년 잠 깨우려 한다저를 허물고 바람을 세우는 파도낮고 낮아져 모음만으로 노래가 되는 시를 쓴다 시인이여바다라는 큰 가락지 끼고 도는 푸른 별에서그대, 시인이려거든바다 건너는 나비의 가벼움으로 오라비유로 말고 통째로 던져 오라애인이자 어머니이며 삶이고 죽음인바다를 사랑하라근원에서 목표까지 온전히 품어구름 되고 비가 되어 정신을 적시는 바다모래톱에 밀려온 부유물들을 보라모든 것 다 받아 준다고 바다가 아니다마실수록 갈증이 되는 허명(虛名),껍데기로 뛰어든 것들 잘근잘근 씹어 내뱉는허허바다 오늘도 어느 해류는목마른 편지가 든 유리병 하나를 실어 나르기 위해입 꼭 다문 채 온밤을 흐른다 - 이영식 시집, 『휴』 중에서 이영식 시인 / 풀.. 2022. 12. 8.
주선미 시인 / 천남성을 만나다 외 2편 주선미 시인 / 천남성을 만나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에서 만난제 몸 가릴 땅 한 평 겨우 지닌 천남성 후박나무, 때죽나무, 으름덩굴에 가려져비자나무 광합성 거들고 있다 독기 영글어 첫서리 넘어겨우 꽃 피우는 그녀키 큰 나무 유혹하듯 손길 뻗쳐 오면곤혹스런 향기 터트려맹독 품은 붉은 입술 보란 듯이 내민다 단 한 번 키스로 운명을 맡겼다 아무리 세월을 닦아도낯선 울타리 제 그늘 거두지 않는 남자 밖으로 나가는 길 끊어 놓고는새벽 찬 바람 걸치고 들어 온다 처마 그늘만 지키던 그 여자빼앗긴 언어 되찾으러온몸 가득 맹독 품은 채 일어선다 뜨겁게 타오를수록 차가워지는 가슴으로막아서는 어둠 불사르고차갑게 식은 독배 든 채 걸어가고 있다 시집 『통증의 발원』(시와문화, 2020) 수록 주선미 시인 / 채석강 암.. 2022.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