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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성 빈센트 팔로티

by 파스칼바이런 2010. 11. 21.
[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성 빈센트 팔로티

 

[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성 빈센트 팔로티

 

 

팔로틴 수도회 설립

 

지금은 익숙하게 들리는 '평신도 사도직'이라는 말이 교회 안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교회는 평신도를 복음화의 대상으로만 보았을 뿐 복음화를 주도하는 주체자로서는 인식하지 못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세상을 복음화할 책임이 있다는 의식은 1962년부터 3년간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비로소 정착되기 시작했다.

 

공의회보다 약 1백 30년 앞서 이 같은 생각은 지녔던 사람이 바로 '팔로틴 수도회'를 설립한 성 빈센트 팔로티(1795-1850)다.

팔로티는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있던 1963년 1월에 시성됐고 교황 요한 23세는 그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했다.

 

팔로티는 1795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1818년 로마 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1835년 4월 4일 팔로틴 수도회의 모태가 된 평신도사도직 공동체 '천주교 사도 연합'을 창설했고 이어 사제 · 수사회, 수녀회를 차례로 세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현재 남자 수도회만 진출해 있다.

 

수도회를 창설한 뒤에도 팔로티는 1850년 이탈리아 온다산 살바토레 성당에서 서거할 때까지 줄곧 로마 교구에서 활동했다.

그가 사목한 영역은 상당히 폭넓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활동 분야에 매이지 않는 것이 팔로틴 수도회의 독특한 카리스마이기도 하다.

 

팔로티는 대학생들과 수녀들의 영적 지도를 담당하면서 동시에 군인과 죄수, 병자들을 돌보았고 직접 저술활동을 하며 출판 사도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또한 선교에 큰 관심을 자고 여러 선교 단체를 설립하는 데 많은 영향력을 미쳤으며, 그가 세운 수도회의 회원들 역시 여러 나라로 파견돼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사도직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모든 사람 안에 숨어있는 사도의 소명과 능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든지 선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선(善)을 위한 평신도의 능력을 발견한 개척자'라며 '교회에 평신도의 시대가 올 것을 예견하고 준비한 사람'이라고 팔로티를 높이 평가했다.

 

 

"모든 신자들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밝히며 예수님의 신앙을 부활시키는 어떤 일에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 지식, 학문, 권력, 직업, 선행 또는 적어도 기도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팔로티가 이런 영성을 가진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깊은 체험이 수반된 것이었다.

사랑 자체인 하느님은 인간이 죄로 멀어질 때에도 인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주님은 인간의 나약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인간의 어떤 작은 행동도 주님을 위해서 할 때는 그대로 그분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팔로티는 깨달았다.

 

우리의 삶이 기쁠 때 주님도 기뻐하신다.

어떤 처지에서도 기쁘게 살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을 주님은 기쁘게 받아들이시며 이 기쁨은 다시 우리의 내적 평화로 되돌아온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능력이 없어서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핑계는 성립되지 않았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봉사 활동뿐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일상생활들까지도 얼마든지 기도로 봉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아픔이나 내적 고통까지도 하느님을 위해 겪고 참아낸다면 그 역시 훌륭한 기도가 된다고 팔로티는 생각했다.

직업의 귀천이나 건강도, 학식이나 외모도 주님께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한다"(2고린 5,14)는 성서 말씀은 사도적 활동의 중심축이었다.

그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외에 더 중요한 규칙은 없으며, 그 사랑이 사람들의 신앙을 쇄신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사도적 열정에 불타게 한다고 확신했다.

 

팔로티의 영성은 팔로틴 수도회의 6가지 서약 안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정결, 가난, 순명 서원 외에 인내와 나눔, 봉사를 약속한다.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할 때 더욱 힘을 얻지만 그만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팔로티는 깨닫고 있었다.

 

팔로티는 그 자신이 사제이면서 평신도의 위상과 역할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인식했다는데서 오늘날 영적을 해이해져 있는 많은 평신도들을 깨워 일으킨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복음화와 성화를 위해 사도직에 헌신한 그의 삶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 사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삶이다”라고 그를 칭송했다.

한 사람의 거룩한 사제로 살았을 뿐 아니라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 바로 성 빈센트 팔로티였다.

 


 

축일 1월22일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 Pallotti)